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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에서 두 남녀 주인공은 참 많이 운다. 그리고 영화는 그보다 더 많은 눈물을 꾹꾹 목으로 삼켜야 했던 시대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열병이 번지듯, 청년들 모두가 헤겔 혹은 마르크스처럼 사고하고 브레히트처럼 시를 쓰고 싶어했던 때. 예상했던 것처럼 이 영화의 갈피에는 브레히트의 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가 살짝 끼워져 있다. 그리고 브레이트 시집에는 남자주인공 현우(지진희 분)의 연인, 어쩌면 그가 가진 서정(抒情)의 모두, 윤희(염정아 분)의 사진이 책갈피로 꽂혀 있다. 이 영화는 끝내 해피엔딩을 맞지 못한 모든 비극적 사랑이 주는 보편적인 울림을 갖고 있는 좋은 멜로드라마다. 동시에 소설과 영화, 드라마를 합쳐 가장 훌륭한 80년대의 후일담 중 하나로 기록될 만하다. 무엇보다 관객들과 팬들에게 반가운 것은 이 영화에는 소설가 황석영과 영화감독 임상수의 인장이 모두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출소한 장기수가 젊은 시절 가슴 아프게 사랑했던 한 여인과 보냈던 짧은 시간의 흔적을 더듬어가는 구성이나 멜로드라마로서의 감성, 80년대의 후일담이라는 원작소설의 바탕을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임상수 감독은 자신이 가진 정치적ㆍ미학적 감각을 작품 전반에 삼투시킨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바람난 가족’ ‘그때 그사람들’ 등을 통해 성, 권력, 역사, 가족에 대해 일종의 정치적 시니컬리즘을 보여준 임상수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는 아마도 냉소와 야유 뒤편에 숨어 있었을 것이 틀림없었을, 자신이 겪었던 시대에 대한 자기연민이나 동시대인들에 대한 동료애 같은, 보다 따뜻한 감성을 보여준다. 언뜻언뜻 날카로운 칼 같은 농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래된 정원’은 임상수 감독의 영화 중 ‘눈물’과 함께 따뜻하고 부드러운 세계를 구성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대와 장르의 전형이나 클리셰(틀에 박힌 수사)를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고유한 정조와 시각을 구현해낸 영화이기도 하다. 머리가 하얗게 센 초로의 남자 오현우가 17년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 버티다 출소한다. 당연히 그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다. 편히 한 몸 뉘일 집이 없던 아들을 걱정하던 어머니(윤여정 분)는 강남의 집장사로 떼돈을 벌었다. 80년 광주도청에서 함께 목숨을 걸었던 친구들 역시 세상의 때를 묻혀가며 살고 있다. 17년 만에 다시 찾은 광주에서 ‘현실’을 확인한 그는 결국 자신의 사랑과 젊음이 집약됐던 그곳, 갈뫼마을을 찾는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도피 중 그를 숨겨줬던 여교사 한윤희와의 짧지만 운명적이었던 시간이 머물러 있는 곳. 한윤희와 오현우는 첫날 서로의 마음과 몸을 허락하고 꿈같은 6개월을 지낸다. 그리고 남자는 떠나고 둘은 죽을 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한다. 여자는 평생을 남자의 동료를 숨겨주며 지내다 암으로 세상을 뜬다. 둘 사이에 남겨진 딸을 만나는 여정이 이 영화의 마지막이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시대의 절망을 녹여내며 80년대를 에둘러 묘사하던 임상수 감독은 불현듯 시위와 분신 장면을 급작스럽게 스크린의 전면에 내세우며 ‘과연 그들의 신념과 행위는 무엇이었나, 지금 여기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임상수 감독이 말했듯 “그렇게 불꽃이 사그라지듯 흔적조차 없이 꺼지고 말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행위가 과연 옳았던 것인가”라는 회의 섞인 질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여전히 유효하거나 의미로운 질문일까. 감독이 관객에게 일종의 정치적 판단을 요구하는 질문인 셈이다. 원작에서는 보다 숭고한 인물로 표현됐던 오현우와 한윤희는 임상수 감독의 말대로 땅으로 더 끌어내려졌고 더 인간적인 현실감과 생명력을 얻었다. 특히 한윤희와 한윤희의 어머니(반효정 분), 오현우의 어머니(윤여정)가 창조한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며 ‘쿨’한 느낌의 인물은 ‘임상수 식’이라고 할 만하다. 지진희는 CF에서 보여준 대로 ‘근사한 남자’일 뿐 아니라 ‘근사한 배우’라는 사실을 입증했고, 염정아는 80년대 속으로 걸어들어간 ‘2000년대의 여성’을 매혹적으로 연기했다. 12세 이상 관람가. 4일 개봉. 이형석 기자(suk@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