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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폭력적인 것은 운명이다 순도100%의 폭력, 슬픈 하드보일드 ‘수’ ‘피와 뼈’에서 오사카에 사는 한국인 김준평(기타노 다케시 분)은 폭력과 생식, 소유 이외의 생존방식은 알지 못한다. 조강지처를 강간하고 이웃의 여인을 탐하며 아들과 딸을 구타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공장의 직원들을 착취한다. 정력을 위해 구더기가 들끓는 썩은 고기를 입에 넣는 김준평은 먹고 싸고 생식하고 소유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삶도 알지 못하며, 그것을 방해하는 누구라도 힘으로 제압한다. 가족이란 그가 폭력과 생식의 힘, ‘피와 뼈’로 건설한 작은 제국이었다. ‘피와 뼈’에 이은 최양일 감독의 3년만의 신작이자 한국에서 연출한 첫 영화인 ‘수’는 전작만큼이나 몸서리쳐지는 냉혹함과 난폭한 에너지를 보여준다. ‘수’는 극중 주인공인 청부해결사 태수(지진희 분)의 ‘수’ 혹은 ‘목숨 수(壽)’이기도 하지만 차라리 ‘수컷’의 수라고 할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주인공 수는 김준평과는 다르게 이상하리만치 섹스 앞에서는 머뭇거리지만 폭력만큼은 여전히, 아니 더욱더 ‘수(컷)’의 거의 유일한 언어이자 소통방식이다. 김준평의 ‘알리바이’(존재증명)가 폭력으로 거둔 먹이감의 맹목적인 탐식과 소유였다면 수의 그것은 죽음에 이르고서야 끝이 나는 복수다. ‘복수는 수의 운명’이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앞을 내다보지 않고 숨차게 달린다. 한 사내가 운전하는 차가 지하주차장을 마구 달리며 다른 차와 벽에 마구 부딪친다. 차의 엔진 소리, 바닥에 바퀴가 미끄러지는 소리, 비명이 섞인다. 공포에 떨던 조수석의 피해자는 사내가 내민 계약서에 서명한다. 찌그러져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차에서 사내가 유유히 내린다. 피도 눈물도 얼굴도 없는 청부해결사 ‘수’다. ‘수’로 불리는 장태수에게는 어릴 때 헤어진 일란성 쌍둥이 형제가 있다. 마약조직 보스(문성근 분)의 손에 들렸던 돈을 훔치다 걸려 자기 대신 잡힌 동생 태진이다. 자신의 잘못으로 마약 조직에 넘어간 동생을 수는 평생 잊지 못하고 찾아 헤맨다. 동생을 만나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표인 수. 어렵게 동생을 만나게 되지만 수가 보는 앞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한다. 수는 경찰이었던 동생으로 신분을 위장해 복수에 나선다. ‘수’에게 동료를 잃고 그의 뒤를 쫓는 형사(이기영 분)와 동생의 여자였던 여형사(강성연 분), 동생을 잡아갔던 마약 조직이 얽히는 가운데 수가 복수로서 동생의 죽음에 ‘속죄’할 수 있을까. 영화의 액션신은 일말의 동정없이 잔혹하다. 방망이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치고 ‘사시미칼’(회칼)이 육신을 난도질한다. 아마도 이제까지의 한국영화 중 가장 많은 가짜 피가 만들어졌을 법하다. 보기 드물게 유혈이 낭자하다. 최양일 감독은 ‘하드보일드’(hard-boiled) 영화를 표방했다. ‘하드보일드’는 도덕적 판단이나 주관적 감정의 개입없이 범죄나 폭력 세계를 건조하게 묘사하는 태도나 스타일의 문학, 영화작품을 뜻한다. 추리소설이나 스릴러영화가 주인공의 심리적 동기나 사건의 논리적 개연성, 수수께끼퍼즐의 완결성을 중요시한다면 하드보일드는 사건과 사실, 행동의 전개에 초점을 맞춘다. ‘수’는 동생 태진이 마약조직에서 빠져나와 경찰이 된 사연이나 수가 동생의 복수에 집착하는 이유, 마약 조직 보스가 태진을 죽인 이유 등을 전혀 보여주지도 않는다. 서로를 폭력으로서만 대하는 등장인물들에게는 인간적인 감정 역시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수에게 ‘복수’는 신탁(神託)이고 ‘피는 피로서 갚는다’는 것은 운명의 규칙, 신이 부여한 섭리다. 수에겐 동생을 그토록 찾았지만 ‘동생을 만나는 순간 비극이 시작될 것’이라는 신탁이 애초부터 있었던 셈이고, 자신마저 해하는 복수는 운명의 계시를 실현하는 과정일 뿐이다. 이 영화는 거칠고 차갑고 메마르다. 또 난폭하게 관객의 시각과 정서를 유린한다. 하지만 정작 이 영화는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가장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것은 신 또는 운명이라는 게 아닐까. 22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이형석 기자(suk@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