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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의 오드리 헵번 vs 화이트의 마릴린 먼로

2010-04-04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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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따라 모습은 변했으되 각인된 이미지는 하나. 그들이 궁극적으로 전하는 바도 하나다. 흔하지만 쉽지 않은 색, 단순하지만 초라하지 않은 색을 절묘하게 소화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스타일계의 톱스타이자 마술사다. 바로 오드리 헵번과 메릴린 먼로다. 세월이 흘러 패션은 진화하고, 스타일은 변해도 우리는 여전히 헵번의 검은색과 먼로의 흰색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검은색 칵테일 드레스가 후줄근한 ‘걸뱅이 패션’ 빈티지룩으로 바뀌어도 우리는 헵번, 그의 세련됨과 우아함에 여전히 열광한다. 또 하얀색 홀터넥 드레스가 흰색 스키니 진으로 변해도 먼로의 백색 유혹은 언제나 뇌쇄적이다. 패션 디자이너 박윤수 씨는 “사회가 발전하고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단순한 것을 추구하게 된다. 색상도 블랙과 화이트 등 모노톤으로 쏠리게 된다”며 “최근 들어 블랙과 화이트 색상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아졌기 때문에 이들 색상의 의상을 입었을 경우 더 강한 인상과 카리스마를 남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먹고 살기 바빴던 시절 검은색은 상복, 흰색은 웨딩드레스에 국한됐던 암울한 기억은 잠시 잊자. 우리는 지금 헵번과 먼로, 그들의 마법 같은 힘과 아름다움에 대해 얘기하려는 것이니까. ▶영화 속 그들은… 전 세계적으로 백치미의 아이콘으로 손꼽히는 메릴린 먼로. 그는 생전에 흰옷을 즐겨 입었다. 하얀 드레스, 하얀 셔츠, 하얀 발레복 등 그의 ‘백치스러울’ 정도로 섹시하며 청순한 이미지는 모두 이 흰 의상들이 만들었다. 그가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통풍기 위에 올라선 채 바람에 날리는 흰 홀터넥 드레스 끝자락을 손으로 움켜쥐며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게 웃는 장면은 먼로를 세계적인 섹시 아이콘으로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 장면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영화와 광고를 통해 리메이크될 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일명 ‘메릴린 먼로 되기’라 불리는 대회들이 난무하고 있으며, 각종 설문조사에서 그 드레스가 ‘영화 속 최고의 드레스’로 뽑히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까만 드레스를 입은 채 그 미소를 날렸어도 그가 세기를 넘나드는 섹스 심벌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마녀가 준 독사과에 속아 왕자가 키스하러 올 때까지 잠이 들어야 했던 ‘흑’설공주 이야기는 언뜻 마음에 와닿지 않는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다. 창가로 들어오는 한 줄기 아침햇살 아래 눈부시게 하얀, 커다란 남성용 셔츠를 입고 침대에서 막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그녀 대신 까만 셔츠의 그녀를 상상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먼로와 검정색은 쉽게 매치하기 힘들다. 반면 자로 잰 듯 ‘정확한’ 이목구비에 지적인 미를 갖췄던 오드리 헵번에겐 검은색 칵테일 드레스가 그만이었다. ‘헵번의 완벽하면서도 우아한 외모를 돋보이게 하는 색은 검정색 외엔 없었을 것’이라고 많은 패션전문가가 감히 주장할 수 있는 것도 검은색이 마치 그를 위해 존재한 색인 양 썩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선보인 검은 새틴 드레스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의상으로 기억되고 있다. 헵번은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후로 언제 어디서나 검은색 의상을 입고 다녔다. 디자이너 지방시가 만든 이 옷은 지난해 12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92만2299달러(약 8억5000만원)에 팔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헵번이 입지 않았어도 그 가격이 나왔을까’라는 상상 따윈 별 의미가 없다. 그 드레스는 헵번을 위해 태어났고, 존재했으며, 그를 추억할 때 늘 되새김질할 만한 옷이다. 패션 디자이너 케이킴은 “단순한 디자인의 칵테일 드레스라도 검은색일 경우 아주 우아하고 세련돼 보일 수 있다. 그게 검은색의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먼로와 헵번 이후 흰색은 청순하거나 섹시한, 검은색은 세련되거나 우아한 이들과 늘 함께해 왔다. 섹시스타 샤론 스톤이 영화 ‘원초적 본능’에서 흰 민소매 드레스를 입은 것이나 반항적 느낌의 앤절리나 졸리가 영화 ‘미스터&미세스 스미스’에서 지능적인 스파이로 출연하면서 까만 드레스를 입은 것은 단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블랙과 화이트는 단순하고 흔한 색상이지만, 적재적소에 배치될 땐 기대 이상의 파급효과를 내는 ‘천의 얼굴을 가진 톱스타’에 다름아니다. ▶요즘 그들은… 조선시대의 명기(名妓) 황진이가 무슨 색 옷을 즐겨 입었는지 요즘의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형형색색의 옷을 갈아 입으며 단지 그의 이미지를 추측케 했다. 그러나 최근 개봉한 영화 ‘황진이’(감독 장윤현) 속 송혜교는 특이하게도 검은색 한복을 입고 등장한다. 그 시대 천하디 천한 요부스러운 이미지의 기생이 아니라, 지배계급에 강하게 저항하며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인물로 그려진 이번 영화 속 황진이는 지조와 위엄, 지적인 매력을 가득 담을 필요가 있었고, 그 이미지를 위해 검정 한복을 입었다. 그 의상이 황진이의 새로 부각된 면모와 함께 화제가 됐음은 물론이다. 반대로 청초한 이미지로 분한 여배우들은 최근에도 예의 흰색 옷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 ‘그 해 여름’에서 순진하고 해맑은 여주인공을 맡아 보석처럼 빛났던 영화배우 수애나 일본 영화 ‘눈물이 주룩주룩’에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결국은 죽는 여고생 가오루 역시 비누냄새가 폴폴 날 것 같은 하얀 옷을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반면에 최고의 패션리더로 손꼽히는 연예인들은 늘 무채색인 검은 옷으로 그들의 세련됨을 과시한다. 그들은 단순해서 더 입기 어려운 검은색 드레스에 그와 어울리는 헤어와 메이크업, 적절한 액세서리와 빼어난 스타일링으로 클래식한 우아함과 지적인 매력을 뿜어낸다. 형형색색 화려한 색과 눈에 띄는 디자인 등 그 자체로도 아름다워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드레스로는 뛰어난 패션감각을 가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반면 하얀색을 입은 이들은 한마디로 ‘자체 발광’이다. 옷을 조금 못 입어도, 디자인이 유행을 한두 해 지나쳤어도 순백의 드레스나 의상은 그 자체로 빛이 나기 때문에 입는 이들을 돋보이게 한다. 몸을 부해 보이게 하거나 입는 이를 지나치게 돋보이게 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면 때론 모이는 시선에 쑥스럽게 되는 단점도 있지만 시선집중이 목적이라면 흰색 만한 의상도 없다. 그래서인지 중요한 순간 중요한 자리에 나타나는 주요 톱스타들은-평소 흰색 옷이라면 질색을 하는 남성들까지도-흰색 정장을 입고 나타나는 때가 많이 있다. 장례식장이 아니라도 검정 넥타이를 매는 패셔너블한 남성들을 자주 볼 수 있고, 결혼식날 신부가 아닌데도 하얀 웨딩드레스 형태의 원피스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도 요즘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옛날 서구사회에서 일명 ‘마녀패션’이라 불리며 금기시되던 검고 치렁치렁한 ‘넝마주의’ 원피스나 하의는 입은 둥 마는 둥(레깅스나 핫팬츠를 속에 입고) 커다란 남성용 하얀 셔츠를 달랑 걸치고 돌아다니는 이들도 흔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행은 변해 왔고 의상의 소재, 디자인, 스타일링 등 패션에 관련된 것 중 하나에서 열까지 변하지 않은 게 없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건 블랙과 화이트 색상이 사람들에게 주는 이미지와 그 색상의 의상들이 연출하는 느낌뿐이다. 블랙의 헵번이냐, 화이트의 먼로냐. 그건 본인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문제지만, 어떤 색의 의상이냐에 따라 달라질 자신의 이미지와 그에 대한 남들의 평가는 오롯이 선택하는 자가 감수해야 할 몫이다. 김이지 기자(eji@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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