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aldmidea

우린 와이프로거! 아줌마 세상을 휘어잡다

2010-04-05 16:55

글자확대 글자축소 프린트 메일로보내기 스크랩 휴대폰전송 twiter metoday

<**1>

“할 일 없는 여편네들이나 하는 거 아냐?” 아삭아삭 생김치 담그기, 김치찌개 맛있게 끓이기, 윤기 나는 멸치볶음…. 아내가 저녁을 차려놓고는 폰카(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릴 때 김동원(48ㆍ가명) 씨는 “헛짓하지 마라. 김치찌개 못 끓이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비웃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아내표 김치찌개의 인기는 폭발적이었고 블로그는 어느 새 방문자 수 1만 명을 돌파했다. 상처주는 말만 골라 아내에게 쏘아대던 김씨는 어느 날 슬그머니 디지털카메라를 선물했다. 폰카에서 디카로 업그레이드된 아내의 블로그가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 요리 소개법에 떴다. ‘남편은 너무 행복하겠다’는 부러움 섞인 댓글들을 죽 읽어보던 김씨는 전문가용 카메라인 DSLR 지름신이 자신에게 강림했음을 느꼈다. 밥상 차리는 요리 책도 내고, 방송 출연에, 문화센터 강좌도 나간다는 ‘살림의 달인 와이프로거, 내 아내도 될 수 있다’는 설렘에 김씨는 그날부터 아내의 팬이 됐다. 아줌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손맛 좋은 요리솜씨, 뚝딱 인테리어 솜씨, 출산 후 다이어트 비결까지. 아줌마들의 비법 전수 공세가 뜨겁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를 깬다’는 아줌마 수다의 위력이 온라인을 타고 사용자제작콘텐츠(UCC)를 만나면서 누르지 못할 막강 파워를 자랑하는 것. 지난해 ‘와이프(Wife)’와 ‘블로거(Blogger)’를 합친 ‘와이프로거(Wifelogger)’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LG경제연구소는 국내 전업주부 540만명 중 59%인 318만명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이 중 9%인 28만명을 주부 블로거로 점쳤다. 이름만 걸어놓은 블로거가 아니라 디지털카메라로 살림 노하우도 전하고 동영상 촬영도 하는 적극적 블로거다. 연구소가 추정한 추세라면 ‘와이프로거’ 200만명 시대도 곧 도래할 태세다. ‘스타 아내 만들기’에 남편이 빠질 리 없다. 요즘 남자들은 아내의 블로그 파워를 실감하면 밀어주고 뒷바라지한다. 한 스타 와이프로거는 남편의 반응을 4단계로 정리했다. 그녀에 따르면 “네가 무슨…”이라며 아내의 블로그 활동을 무시하던 1단계에서 아내의 블로그 인기를 점차 실감하게 되면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해주는 2단계가 되고, 아내가 스타급 블로거가 되면 몰래 수백만원짜리 전문가용 카메라까지 사주는 3단계에 도달한다. 아내의 사진과 동영상을 직접 촬영하고 편집해 올려주는 4단계가 마지막이다. 남편이 먼저 남다른 재주를 알아본 리폼의 고수도 있다. 사과상자로 프로방스풍 문패를 만들고, 참치캔으로 아로마 촛대를 탄생시키는 솜씨를 가진 배재경<36ㆍ사진> 주부. 결혼 8년차, 5살짜리 딸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그야말로 와이프로거계의 ‘슈퍼 루키’다. ‘루시아즈’란 이름으로 포털사이트 Daum의 TV팟에 솜씨자랑을 한 지 1년도 채 안됐다. 배씨는 미술을 전공했다. 주특기는 손재주를 살려 못 쓰는 물건을 집안의 반짝 인테리어 소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 배씨는 “남편의 권유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됐다”며 “출판사로부터 책 출간을 제안받아 올해 말 책이 나오게 되는데 평범한 주부도 즐겁고 꾸준히 무언가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줘서 기쁘다”며 수줍게 웃었다. 배씨처럼 이야깃거리를 블로그에 풀어넣던 와이프로거들의 책 출간 붐도 거세다. 문성실 씨는 친정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반찬 솜씨를 그대로 블로그(http://blog.naver.com/shriya)에 소개해 2년 만에 스타가 된 대표 와이프로거. 그는 식단을 고민하는 주부들의 해결사다. ‘문성실의 아침, 점심, 저녁: 집 밥 먹고 살기 프로젝트’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인테리어 DIY(Do It Youself) 블로그 ‘레몬테라스’(http://blog.naver.com/remonterrace)를 운영하는 황혜경 씨. 그는 ‘반나절이면 집이 확 바뀌는 레테의 5만원 인테리어’라는 집 꾸미기 책을 출간했다. 요리, 인테리어, 육아, 재테크 등 생활의 알짜 정보를 담은 책들이 베스트셀러인 시대, 한국의 와이프로거들도 블로그(blog)와 북(book)을 합친 신조어인 블룩(blook) 열풍에 속속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아줌마의 수다 파워에 기업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눈은 예리하고 손은 맵고 입은 거침없는 아줌마는 각종 신상품 모니터 요원으로 딱. 게다가 잘됐을 경우 입 마케팅 홍보효과도 최고다. 생활문화기업 CJ에서는 CJ 스타 블로거를 따로 육성한다. 제품이 출시되면 이들 와이프로거는 해당 제품을 실제 요리에 사용하고 제품 용기로 깜짝 변신 리폼을 하기도 하며 요리법과 리폼법을 블로그에 올린다. 게다가 바로 옆에서 말하는 듯 맛깔스러운 아줌마식 설명 방식도 함께한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도 않고, 일반 소비자들에게 광고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서니 기업은 손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는 격이다. 피드백도 꼼꼼하다. 한 번 써본 소비자는 홀딱 반하게끔 제품 판매 전 부족한 점과 잘된 점을 콕 집어준다. 이보다 더 좋은 1등 고객이 없다. CJ고객경영 고객커뮤니케이션 파트 와이프로거 운영 담당 임지은 대리는 “‘집에서 여편네들이 할 일이 없으니…’라며 와이프로거 기획안에 콧방귀를 끼던 고위 간부는 요즘, 와이프로거들의 동영상 엿보기에 푹 빠져 있다”고 전했다. 블로그의 위력을 간파하고는 아예 고객에게 블로그로 서비스하는 기업도 있다. ‘백 번의 광고보다 잘 키운 블로그 하나가 더 낫다는 것.’ 대표적인 것은 미용업계. ‘연예인처럼 포니테일하는 법’ ‘단발머리 컬 마는 법’등 미용실 언니의 손길 없이도 집에서 제품이나 기구를 이용해 간단히 연출할 수 있도록 동영상 서비스를 해준다. 화장품업체 바비브라운은 아예 자사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내세워 블로그를 통해 화장 노하우를 알려준다. ‘회식 후 칙칙한 얼굴 커버하기’ ‘출근길 10분 화장법’ 등 제목만으로도 확 당기는 생생 동영상은 “내일 당장 해봐야겠다”는 고객들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얼굴 유수분 공급에 좋은 페이스 오일은 일반 매장에서도 파나요?” “립스틱 색깔이 정확히 어떤 건가요?” 동영상에 등장한 화장품 구입 문의도 줄을 잇는다. 이 같은 ‘와이프로거’의 열풍 뒤에는 맛있는 반찬은 나눠 먹고, 살림 비법은 서로 나누는 우리네 전통 수다법(?)이 한몫했다. 수년 전만 해도 김치 잘 담그는 동네 아줌마 집에서 김치를 함께 담그며 배우는 게 연례 행사였고 김치전, 파전 등 함께 간식거리를 부쳐 먹으며 노하우 배우기는 아줌마들의 생활에 배어 있는 문화였다. ‘와이프로거’라는 용어는 신조어지만, 영희네 물김치, 철수네 바느질 등 우리네 커뮤니티는 매체만 다를 뿐 예전부터 있어 왔던 셈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단순히 생생한 사진과 동영상뿐 아니라, 주부의 입담도 와이프로거 성공의 핵심 포인트라고 강조한다. 와이프로거들의 책 출간을 돕고 있는 한 출판 업계 관계자는 “솔직하고 친근한 말투에 읽는 맛이 있는 블로그가 인기”라면서 “시장이나 슈퍼에서 마주치며 하던 수다 그대로를 생생히 옮긴 듯한 말투가 그 비결”이라고 말했다. 업무에 치이고 일정에 묶여 알짜 생활 노하우가 필요한 직장인들에게 육아와 가사 노동 밖에 모르는 답답한 아내는 더 이상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생활의 달인’과 ‘살림의 귀재’들이 있을 뿐이다. 서은정ㆍ성연진ㆍ김선희 기자(she@heraldm.com)

Related tags


포토슬라이드 실시간 주요뉴스

prev next

인기뉴스

인기 포토

AUTO MOBILE 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