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송희일 감독이 ‘디 워’를 가리켜 “70년대 청계천에서 마침내 조립에 성공한 미국 토스터기의 모방품”이라느니,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스스로조차 정리가 안 돼 있다면 그 아무리 입술에 때깔 좋고 비싼 300억원짜리 루즈를 발랐다고 해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혹평을 했다. 또 “영화는 영화이지 애국심의 프로파겐다가 아니다”는 비판도 가했다.
맞는 말이다. 영화는 영화다워야 한다. 영화답지 못한 영화가 애국심에 호소하고, 관객들은 두서없이 혼란스런 영화를 보고 난 뒤 바보 취급당한 느낌을 받으며 불쾌한 마음으로 영화관을 떠난다.
사실 ‘디 워’에 대해 아쉬운 점은 많다. 같은 괴수 영화지만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적지않게 비교된다. 이송희일 감독의 말대로 “영화적 시간과 공간 내에서 사유하는 방식”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비평가들의 말을 빌리자면 전자는 현란한 특수효과(VFX)를 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컴퓨터 그래픽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둔 나머지 정작 중요한 캐릭터와 스토리 텔링은 뒷전으로 밀려난 인상을 준다. 스티브 야블론스키의 음악도 인상적이지 못하고, 아리랑은 더더욱 ‘사유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이런 점에서 비교한다면 후자는 적지 않은 차별성을 갖는다. 정부의 역할과 한ㆍ미 관계, 할리우드가 거의 모든 영화에 가장 중요한 흥행요소로 삽입시키는 가족의 의미 등이 녹아 있다. 관객은 비극적ㆍ희극적 아이러니와 위트를 만끽할 때 비로소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 영화의 위기를 몰고 온 그 많은 그렇고 그런 영화를 제쳐두고 유독 심형래 감독을 흠 잡는 데 매달리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3000억원을 쏟아부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파이더맨 3’라고 특별한 ‘사유의 방식’을 느낄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괴물’의 미국 개봉 극장 수가 100여개에 불과했던 반면 ‘디 워’는 1000개가 넘는 스크린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사유의 방식’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오히려 ‘창작의 자유’라는 사치에 빠져 관객 없는 영화를 양산한 감독들, 유명 감독의 이름만 믿고 검증도 않은 채 돈을 내민 제작사들이야말로 한국 영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범들이다.
한국 영화의 미국 시장 공략이 어려운 것처럼 유럽 영화도 미국 땅에서 맥을 못 추기는 마찬가지다. 극장에서만큼은 일상 생활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그냥 웃고, 즐기는 스릴 만점의 영화를 원화는 관객들에게 예술지상주의 영화를 강요하는 것은 감독의 허영이다. 대중이 외면하는 영화를 만들면서 스크린쿼터 운운하는 것도 자가당착이다.
“바보들아, 문제는 흥행이다.”
로스앤젤레스=김영한 특파원(yhkim@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