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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진실/데릭 젠슨 지음/이현정 옮김/아고라
데릭 젠슨의 책을 읽는 것은 편치 않다. 우리문화 깊숙이 숨겨진 증오와 위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노암 촘스키, 하워드 진과 같은 급진적 사회변혁가와 같은 반열에 오르는 만큼 그의 목소리는 특히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겐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왜 세상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냐고 쉽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드러내는 얘기들은 모른 체하기 쉽지 않다. 인종문제, 고문, 강간, 포르노 사이트, 아동학대, 생태파괴 등 그가 적시하는 문제들은 우리 안에도 독버섯처럼 퍼져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흑인이 교도소에 갈 확률은 백인의 아홉배에 달한다. 저자는 이유없이 죽어간 흑인들이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사례들을 열거한다. 먼 얘기가 아니라 최근의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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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라는 말은 이미 퇴색해 이런 뿌리깊은 행위들을 적절히 설명해주지도 못한다. 그만큼 철저히 내재화됐다는 말이다. 저자는 시야를 확대한다. 이런 사례가 비단 흑인에게만 해당될까. 강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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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많은 여자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강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법 해석과 달리 뿌리깊은 증오범죄로 본다. 이 책은 제3세계 아동 매춘, 1페니짜리 수분보충제가 없어 죽은 50만명의 이라크 어린이들, 게으르다는 이유로 땅을 빼앗기고 노예가 된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위한 저자의 투쟁인 셈이다. 저자가 이 모든 문제들의 배후로 제시하는 것은 생산이다. 생산성의 개념아래서 세상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고 점점 더 나아지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소통부재, 기아, 노예화, 생태파괴로 우리 삶을 피폐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생산방식을 잉태한 자본주의에 혐의를 주기보다 자연과 타인에 대한 착취를 문제삼는다. 이런 노예제야말로 문명의 기본조건이었다고 말한다. 저자의 해법 또한 극단적이다. 문명의 제거다. 주변사람들을 하나하나 주체로 인식하고 살과 뼈가 있는 인간으로 돌아가기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한 특정한 나무, 특정한 햇빛을 즐길 수 있는 행복을 누구나 누릴 수 있으려면 우리가 되풀이해온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백합꽃을 보기 위해 대단위 단지위에 뿌리는 맹독성 물질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내가 옳은 방향에 섰을 때라도 세상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고 함께 나아가리라는 순진한 희망은 무참히 짓밟힐 수 있다. 저자는 그런 순간이 오히려 기운나게 해준다고 말한다. 문화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 문화의 보상을 받는 곳에 있다는 사실은 그에 따르면 부끄러움이다. 즉 자신이 누리는 문명의 삶이 누군가의 착취에 기초하는 불공평한 이득의 자리이기때문이다. 따라서 거기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다행이고 용기를 준다고 말한다. 우리는 제한된 선택지가운데서 이것 또는 저것을 선택하면서 하루 하루 살아간다. 그리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미 연방 대법원판사 존 마셜의 유명한 판결대로 " 발견된 것으로 자격이 생긴다. 그 자격은 점유로써 완성될 수 있다"는데 무의식적으로 공감하며 위안을 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다른 선택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정무역`처럼 다른 이들의 눈물을 살필 줄 아는 경제에 눈을 뜨는 사람들의 연대가 생기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문화임에 틀림없다. 이윤미기자(meelee@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