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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인사파동 YS때 답습?

2010-04-0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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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혹독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가 서슬 퍼런 조각 검증의 칼을 맞고 있다. “너무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DJ정부, 참여정부에서도 첫 조각 때 이렇지는 않았다. 5, 6공 때엔 정권이 서슬 퍼런 칼을 휘둘러서인지 첫 조각에 별 이의가 없었다. 정치사를 돌아보면 작금의 상황은 문민정부 출범 초기와 비슷하다. 군정이 종식되고 할 말을 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조각 검증에서 닮은 문민정부의 행로가 이명박정부에서 되풀이될지는 미지수다. 다만 ‘닮은 첫단추’는 이 대통령이 곱씹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검증 폭탄’에 휘말려 이춘호 여성부, 남주홍 통일부, 박은경 환경부 장관 내정자가 줄사퇴했다. 고뇌에 찬 ‘햄릿형’ 인사라던 대통령 측근들의 자랑은 쑥 들어갔다. 5000명 이상의 인력 풀을 활용해 검증에 검증을 거듭했다는 주장도 이젠 없다. “1, 2명 더”를 주장하는 통합민주당 일각의 기류로 보아 후폭풍이 쉬이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1993년 김영삼정부의 출범 때도 검증 폭탄은 폭발했다. 김 전 대통령은 ‘YS 한명회’라 일컬어지는 전병민 씨를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내정했지만, 그의 장인 과거 문제가 불거지면서 전 수석은 3일 만에 사퇴했다. 김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 조각을 발표한 지 열흘 후 3부 장관에 대한 개각을 단행하고 말았다. 박희태 법무부 장관은 딸의 미국 국적 취득 문제, 박양실 보사부 장관은 부동산 투기 의혹 논란 , 허재영 건설부 장관은 개인적 비리 등으로 10일 만에 옷을 벗었다. 당시 언론은 꼼꼼하지 못한 ‘감(感)의 정치’, 그 절정판이라고 꼬집었다. 이명박정부와 문민정부 인사 실패의 공통점은 검증의 부재에 있다. ‘고소영(고려대ㆍ소망교회ㆍ영남 출신) 인사’라는 비아냥처럼 측근 위주, 지인 위주의 인사가 주류였다는 뼈아픈 지적도 나온다. 오랜 야당생활을 하다보니 인사자료가 충분치 않아서 문제가 생겼다는 청와대의 해명은 일견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검증 폭탄’의 핵심이 ‘부동산’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검증에 좀더 시간을 할애했어야 했다. 문민정부 조각 시 일부 장관 내정자가 부동산투기 의혹이 일어 낙마한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능력만을 최우선시하고, 부동산 검증 기준을 과거보다 완화시킨 게 근본적인 자충수였다는 평가도 들린다. 첫단추에서 곤욕을 치른 YS의 행로는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등 순탄치는 않았다. 첫 조각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 대통령은 지금부터라도 안정된 검증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임기 내내 인사 때문에 비판의 도마위에 올랐던 노무현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검증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한다면 이번 홍역은 ‘액땜’이 될 수 있다는 충고도 들린다. 이 대통령의 행보가 주목된다. 김영상 기자(ys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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