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재 디자이너의 삶과 예술
프랑스 패션강국 견인
의복 性경계 무너뜨려 여성 사회진출 촉진 기여
패션계의 큰 별이 졌다. 천재 디자이너이자 패션 아이콘인 이브 생 로랑(Yves Henri Donat Mathieu Saint Laurent)이 지난 1일(현지시간) 7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고 피에르 베르주 생 로랑 재단 측이 밝혔다. 생 로랑은 지난 2002년 은퇴 이후 오랫동안 지병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직접적인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패션계의 모차르트’ ‘20세기 패션의 거장’ 이브 생 로랑은 모던하면서도 심플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지나치지 않는 의상으로 현대 패션계를 이끌어왔다. 그는 무엇보다 여성을 옷으로부터 해방시킨 혁명가다. 1966년 세계 최초로 여성 바지정장을 도입하고 사파리 재킷을 고안하면서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를 없앴다. 그는 이런 공로로 1983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오브 아트에서 생존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회고전을 갖기도 했다. ‘지난 60~70년대 패션계는 이브 생 로랑이 지배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닐 정도로 그의 업적은 광범위하다. 당시 경제적 부흥과 신장된 여성들의 자유를 토대로 그의 이름과 YSL 로고, 기성복과 향수 라인인 리브 고슈(Rive Gauche) 등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세계적인 배우인 카트린 드뇌브를 비롯, 수많은 톱스타들과 유명인사들이 평생 그의 옷을 즐겨 입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는 일본과 한국, 태국 등 아시아 시장에 최초로 진출하면서 프랑스 패션계의 선구자로 거듭났다. 이브 생 로랑은 1936년 8월 1일, 당시 프랑스령이던 알제리의 작은 바닷가 마을 오랑에서 태어났다. 수줍고 조용한 성격의 그는 보험회사에 다니던 아버지 밑에서 평범한 유년 시절을 지냈다. 하지만 옷과 패션에 대한 열정만큼은 남달랐다. 17살이던 1953년,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을 안고 파리로‘상경’했다. 의상 스케치로 가득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무작정 당시 보그의 에디터였던 미셸 드 브루노프를 찾았다. 드 브루노프는 그의 작품을 보자마자 단숨에 매료됐다. 바로 다음 달엔 그의 의상들로 가득찬 잡지가 발간됐다. 그는 운도 좋았다. 이듬해 파리에서 열린 한 디자인 대회에서 4부문 중 3부문을 석권했다. 유일하게 놓친 부문의 수상자는 현재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칼 라거펠트였다. 그의 천재적인 재능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1958년엔 크리스찬 디오르 상점의 후계자로 입성하게 된다. 디오르의 급사로 갑작스레 추진된 일로, 당시 생 로랑의 나이는 22세에 불과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재정적인 어려움에 시달리던 디오르를 일으키며 업계에 파란을 일으킨다. 1960년 군 입대로 자신의 자리를 디자이너 마르크 보앙에게 넘겨주게 되나 1962년 제대하자 그는 당시 연인인 피에르 베르주와 함께 파리에 고급 의상실을 차리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한다. 그의 디자인과 색채는 화가들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피카소와 미로, 마티스 등 미술 작가들에 영향을 받은 아플리케(갖가지 모양으로 오린 작은 헝겊을 붙인 장)와 구슬 장식 등은 그만의 독특한 이브닝 드레스를 만들어내며 업계의 화제를 불러모았다. 그러나 그는 유명세에 비례해 논란도 많았다. 1970년대 중반 오피움(Opium.아편이라는 뜻)이라는 향수를 선보이면서 그 자신이 마약류에 탐닉한다는 의혹에 혹독하게 시달렸으며, 1980년대 들어서는 그의 고전적인 스타일이 세계 시장에서 외면을 받기도 한다. 더욱이 1999년에는 패션기업 구치와의 갈등으로 2002년 예상보다 일찍 은퇴 결정을 내리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의 다재다능함과 비범한 재능은 여러 전문가에 의해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동료 디자이너인 크리스찬 라크루아도 “샤넬, 스키아파렐리, 발렌시아가, 디오르 등의 디자이너 모두 비범한 일을 해냈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특정한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브 생 로랑은 그들 모두의 재능을 합쳐놓은 사람인 양 훨씬 더 다재다능했다”면서 “그는 샤넬의 기본 형태와 디오르의 화려함, 스키아파렐리의 위트를 합쳐놓은 걸출한 디자이너”라고 칭송했다. 만년에 우울증에 시달렸고 이름은 다소 잊혀졌지만 사람들은 그를 20세기 패션의 살아 있는 전설로서기억한다. “나는 내 작품에 최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감히 내 옷을 예술이라고 칭할 순 없지만, 늘 예술작품에 가깝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만은 알아주길 바란다.” 천재성과 피나는 노력, 화려함과 역경, 도전과 행운이 조화된 그의 인생과 그가 빚어낸 작품들은 이미 예술의 반열에 올라 있다. 김이지 기자(eji@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