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부터 중산층, 고소득층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전 계층이 이민을 꿈꾸고 있다. 최근까지 아이들 영어교육문제가 이민의 주된 이유였지만 살인적인 물가에 시끄럽고 복잡한 이 사회가 지긋지긋해 짐을 싸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이민을 떠나는 배경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져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치솟는 환율 때문에=지난해 말 자녀를 미국에 유학 보낸 중소기업 사장 이모(47) 씨는 최근 아내와 이민을 논의했다. 이씨는 “환율이 너무 올라 학비를 대는 데 너무 힘이 부친다. 차라리 영주권을 얻는 것이 아이한테도 나한테도 모두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민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에 유학하는 21세 미만의 학생의 경우 영주권을 동반 가족과 아이 모두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만큼 돈은 절약하면서도 현지에서 사는 데 이점은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이씨는 오히려 “정부는 환율을 잡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한 게 뭐가 있느냐”며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만 생겼다고 했다.
▶명퇴금 받아 떠난다=다음달부터 공공기관 민영화의 통ㆍ폐합 작업이 진행될 것이란 소식에 이민을 생각하는 공무원들도 늘어나고 있다. 공무원인 박모(45) 씨는 정부가 구조조정 대상자에 대해 명퇴금을 지급할 것이라는 정부 방침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박씨는 “미국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남아 지역 정도는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당장 구조조정되면 할 일도 마땅치 않으니까 별 수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치솟는 물가…시끄러운 사회 분위기가 싫다=치솟는 물가 때문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민을 결심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 이모(41) 씨는 “이민이라는 것은 사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교육비와 물가, 그리고 답답한 직장생활이 이민을 결심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위에서는 반대를 많이 한다. 이민 가서 뭐 먹고 살며,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답답해서 어떻게 살겠냐고. 물론 처음은 힘들 것을 예상하고 간다”고 밝혔다.
최근 말레이시아로 답사까지 다녀온 은행원 김모(38) 씨는 곧 은행을 그만두고 떠날 예정이다. 그는 “요즘 같아서는 돈 없는 서민들은 정말 살기 힘든 나라가 우리나라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한 달에 약 120만~150만원 정도만 있어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고 해서 이민을 결정했다. 사실 고민도 많이 했었다”고 털어놨다.
은행원 황모 씨는 “처음에는 아이들 교육비만 갖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한국의 정치ㆍ사회ㆍ경제적 상황이 싫다. 정기적으로 터지는 비리문제도 싫고 물가도 많이 올라서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기가 힘들다. 요즘 시끄러운 사회분위기도 떠나고 싶게 한다”고 말했다.
▶돈 벌러 떠난다=강남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30억원대의 자산가인 이모(50) 씨는 요즘 부동산시장이 뜨기만을 기원하고 있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가운데 부동산시장 역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국내에서 재테크로 돈 벌 길이 사실상 막힌 게 이씨가 짐을 싸는 이유다.
최상현ㆍ조동석 기자(puquapa@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