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계를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던 금융 위기가 한 고비를 넘기면서 악몽 같은 검은 10월이 지나갔다. 지구촌 곳곳에서 희미하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금융 패닉에 가려져 있던 불황과 경기 침체가 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위기를 넘긴 안도감보다 또다시 몰려오는 실물 위기 공포를 떨치기 어렵다.
검은 공포가 사라진 자리에 잿빛 불황이 대신 들어서면서 세계 경제는 다시금 길고 고통스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오히려 체감 고통의 절심함은 이제부터의 실물 침체 후유증이 훨씬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파동의 진원지인 미국은 내년에 7년래 최악의 마이너스 성장과 소비 감퇴가 예고되고 있고, EU와 일본도 정체 내지는 마이너스 성장이 예견되면서 지구촌은 선ㆍ후진국 가릴 것 없이 실업 홍수가 이미 시작됐다.
미국은 달러 패권주의로 상징되는 세계적 리더십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지만 그것이 과연 지금의 국제 금융 시스템과 기축통화 체제를 근본부터 뒤집는 데까지 나아갈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달러 중심의 브레턴우즈 체제가 내포한 한계와 취약점은 이번 파동에서 충분히 노출된 만큼 선진국들은 어떤 형태로든 현 체제의 개혁에 착수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경제 축으로 부상한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의 역할 분담이 큰 관심거리다. 특히 중국은 상하이 협력기구와 결속을 바탕으로 국제 통화 시스템 변화와 기축통화 다양화를 강력히 제기, 이번 파동을 계기로 중국의 주도권을 확고하게 확립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반면 남미에서도 메르코수르 회원국 간 거래에서 달러 배제 움직임이 가시화했다.
이런 세계 경제 다극화 시도들이 IMF, WTO 체제를 대체할 새 금융체제를 구축해낼 수 있을지, 중국 위안화나 러시아 루블화가 과연 새 기축통화로 격상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것은 미국의 금융 위기 해소와 실물 회복이 얼마나 신속하게 이루어지느냐에 좌우되는 탓이다. 우리의 경우도 일단 외환위기의 고비는 넘겼지만 원화 유동성, 건설업 및 중소기업 부도 위기 등 금융 불안의 완전 해소는 아직 멀었다. 실물 침체는 더 심각해 내년은 2%대 성장까지 예측되는 어려운 시점이다. 미국의 ‘통화 원조’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추가 금리 인하 등 선제적 금융 관리와 종합적 경기 대응에 전력투구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