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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저승사자도 돌려보낸 ‘암사자’ 서혜경

2010-04-01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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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가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할 때 대부분의 사람은 건반 위를 미끄러지듯 오가는 손가락에 시선을 집중한다. 하지만 사실 피아노는 양쪽 팔과 어깨, 등, 가슴, 페달을 밟는 오른발까지 온몸으로 연주하는 악기다. 한때 피부암으로 고통받았던 유명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등 부위의 암세포를 수술로 제거하자는 의사의 권유를 끝까지 외면했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유방암 역시 피아니스트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암세포를 제거하려면 가슴 근육과 신경까지 절제해야 하기 때문에, 수술 후에는 예전처럼 힘 있게 연주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서혜경(49)은 지난 2006년 10월 유방암 3기 진단과 함께 주치의로부터 피아노를 포기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하지만 “피아노와 삶 중 하나를 택하라면 피아노를 택하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결국 피아노를 연주하는 데 필요한 신경과 근육 조직을 남겨놓은 채 암세포만 제거하는 초정밀수술을 받고, 1년여 동안 8번의 항암 치료와 33차례의 방사선 치료를 견뎠다. 그리고 지난 2008년 1월, 항암 치료를 끝낸 지 3개월 만에 무대에 올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 3번을 내리 연주했다. 그 후 다시 1년. 서혜경은 전국 투어 연주를 시작한다. 2월 6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을 시작으로, 2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월 21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2월 25일 양산문화예술회관, 2월 27일 충남대 정심화국제문화회관, 3월 3일 울산현대예술관, 3월 5일 대구시문화예술회관에서 ‘밤과 꿈(Night and Dream)’이라는 제목으로 독주회를 한다. 연습에 한창인 그를 만나러 경희대 음대에 있는 연구실로 찾아갔다. 환하게 웃는 얼굴에서는 병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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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의 전국 투어 “전국 투어 연주는 4년 만이에요. 제가 완쾌해서 왕성하게 연주하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려고 계획한 거예요.” 서혜경은 이번 연주회에서 어머니와 어린 아이, 임신부와 태아가 함께 듣기에 좋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소품으로 1부를 꾸몄다. 2부에서는 엄청난 체력을 필요로 하는 리스트 피아노소나타를 연주할 예정이다. 한곡 한곡을 고른 데에 의미가 특별하다. “아프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됐어요. 제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어머니와 자녀를 위한 연주회를 구상하게 됐죠. 한편으로는 제가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던 20~30대 시절에 즐겨 연주하던 리스트 소나타 b단조 작품 45번을 꼭 들려주고 싶었고요.” 지난해 말 ‘베토벤 바이러스 인 라이브’ 콘서트 전국 투어를 건강상의 이유로 갑작스럽게 취소했던 터라, 무엇보다 건강 문제가 제일 궁금했다. 전국 투어를 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냐고 묻자 그는 오히려 자신이 아파 보이냐고 반문했다. “작년에 너무 많은 연주를 소화했어요. 암 때문이 아니고 과로로 몸살이 난 거예요.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이 다시 주어졌다고 생각하니 더 많은 이에게 음악의 기쁨을 나눠줘야겠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40년 넘게 갈고 닦아서 이제야 제 마음에 드는 소리를 만들 수 있게 됐는데 연주를 안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연말에 전국 투어를 강행하려니까 의사가 강력하게 주의를 주더군요. 잠깐 중단하고 쉬면서 이번 독주회를 준비했어요.” 서혜경은 연주를 취소한 뒤 “다시 투병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을 때 마음에 큰 상처를 입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타고난 연습벌레인지라 오래 신경 쓸 겨를 없이 다시 강행군에 돌입했다. 1월 1일부터 하루 13시간씩 내리 피아노 연습에 매달린 것. 수술 후 다시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던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의 체력과 정신력이다. “수술 직후에 의사 선생님 몰래 오른팔을 번쩍 들어올려 봤어요. 올라가더군요. 어찌나 다행이던지. 혹시 팔에 힘이 없어서 연주를 못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나 자신을 시험하듯 도전하고 있다” 수술하고 사흘 만에 퇴원해 피아노 앞에 앉은 ‘독종’이지만 그에게도 시시때때로 엄습하는 불안감은 무서운 적이다. 그래도 이제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새해 첫날 13시간을 연습하고나서 어깨가 부서질 듯 아프더니 밤에 죽는 꿈까지 꿨어요.”(웃음) 지난해 4월에는 주치의가 운동을 권해서 재즈댄스를 배우다가 오른손 새끼손가락의 신경을 다치는 불운도 겪었다. 피아노는 본래 열 손가락 중 하나만 빠져도 균형을 잃기 쉽지만, 그래도 굴하지 않고 운지 방법을 바꿔 청중 모르게 아홉 손가락으로만 연주했다. 새끼손가락은 아직 완치되지 않아 이번 전국 투어 연주에서도 옥타브 진행이 많은 리스트 곡을 빼고는 대부분 아홉 손가락으로 연주할 예정이다. “오른쪽 가슴과 겨드랑이를 수술하고 왼손 피아니스트가 되는 줄로만 알았던 때도 있는 걸요. 적응돼서 괜찮아요.” 서혜경은 올해 전국 투어를 마친 뒤, 3월 중순에 유엔(UN) 본부에서 열리는 갈라콘서트에 출연하고, 3월 말 베를린에서 독주회를 연다. 5월 링컨센터 독주회를 비롯해 다양한 연주회가 이어진다. 가을에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전곡 녹음을 시작한다. 틈틈이 자신이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여러 병원의 암센터에서 암환자를 위한 작은 음악회도 열 계획이다. 그는 더 나아가 세계 투어 연주까지 계획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체력이 받쳐주겠냐고요? 글쎄요. 일단 해봐야 가능한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서혜경은 “조금씩 체력을 키우면서 나 자신을 시험하는 기분으로 도전하고 있다”며 기자에게 “완전히 나아서 에너지 넘치게 연습하고 있다고 써 달라”고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바로 그런 불굴의 의지와 도전정신이 ‘건반 위의 암사자’ 서혜경을 지금껏 건재하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소민 기자/som@heraldm.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m.com 2008년 1월 완쾌 후 재기무대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 3번을 잇달아 연주한 서혜경.[기획사 제공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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