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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군 김광철 묘지명, 고려말 권력암투 암시

2010-04-0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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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권력층의 암투를 여실히 보여주는 묘지명이 공개됐다. 하남역사박물관(관장 김세민)은 고려 후기에 세력을 떨치기 시작한 광산 김씨 가문의 화평군(化平君) 김광철(金光轍, 1284~1349)의 묘지명을 최근 입수해 내용을 분석했다. 길이 116㎝, 폭 47㎝인 이 묘지명은 다른 고려시대 묘지명처럼 검푸른 청석(靑石)판에 김광철의 행적을 자세히 새겼다. 일부 글자가 깨져나가긴 했지만 묘지명은 김광철의 가문과 주요 경력을 기술한 대목과 죽은 이에 대한 찬송문으로 구성됐다. 명문을 검토한 최규성 상명여대 명예교수(고려사 전공)는 “고려시대 묘지명은 글을 쓴 사람이 죽은 사람과의 관계를 밝힌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 묘지명에는 그런 부분이 생략됐다”고 말했다. 김광철은 ‘고려사’에 열전이 남을 정도로 광산 김씨 가문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인물로, 고려사에는 충정왕 원년(1349) 6월 병자일에 ‘화평군 김광철이 졸(卒)했다’는 아주 짧은 행적만 나와 있다. 하지만 묘지명을 통해 김광철이 17세에 과거에 급제해 조정에 나간 후 학문과 관계가 깊은 예문관 대제학을 비롯해 성균관 제주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한 사실이 드러났다. 최 교수는 “김광철이 부친(김태현) 못지않게 학문과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음이 확인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묘지명에 의하면 김광철은 죽기 전에 둘째 사위에게 “경창부원군(慶昌府院君)이 반드시 즉위할 것이니 너희들은 절대로 두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창부원군은 나중에 충정왕에 옹립된다. 이 같은 언급은 이 시대 원(元) 간섭기 고려 권력층에서 차기 권력의 향배를 둘러싸고 숨막힌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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