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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으로 사라질 아르코미술관

2010-03-3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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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동숭동, 옛 서울문리대 자리에 위치한 아르코(ARKO)미술관은 미술가들에겐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입니다. 오늘날 미술계에서 맹활약하는 작가 중 적지않은 이들이 아르코를 디딤돌로 성장했습니다. 공연예술이 주류를 이루는 대학로에서 ‘미술’의 기치를 드높이며 미술관과 아카이브로서 일정 역할을 했던 아르코미술관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30돌을 맞은 시점에서, 이 미술관은 존폐기로에 처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건축가 고(故) 김수근선생이 설계한 건물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법한 붉은 벽돌건물의 아르코미술관은 오랫동안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으로 불리었습니다. 그간 이곳의 일부 전시는 다소 실험적이거나, 자료중심적이어서 대중과의 소통이 그닥 원활치 못했습니다. 인지도도 다소 낮았고요. 정부가 최근들어 아르코의 대대적인 방향전환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르코는 1979년 개관이래 공공 미술관이 태부족한 국내 현실에서 비영리 공공미술관으로써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전시를 지속적으로 열어왔습니다. 모두들 상업성과 흥행에 함몰돼 중심을 잃곤 했던 시기에도, 아르코는 아르코만의 분명한 성격과 뚜렷한 지향점을 견지했던 셈입니다.

그러나 문화부는 전남 나주로 이전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본관과 아르코미술관을 묶어 올가을 다장르 예술을 다루는 복합문화센터로 바꾼다는 복안입니다. 두 시설을 연계해 공연, 시각예술, 문학 등을 아우르는 ‘대학로 아트센터’(가칭)를 만든다는 거죠. 레지던스 프로그램 등도 운용된다는 소식입니다. 따라서 현재로썬 아르코미술관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커졌습니다. ‘대학로 아트센터’로 바뀌면 경우에 따라 미술이 담기긴 하겠지만 미술관만의 고유성과 독자성은 이제 사라지는 셈입니다. 예술위측도 이미 아르코미술관을 연극, 무용, 문학 등에 대폭 개방하는 새 활용전략을 짜고 있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비영리적 공공미술관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미술계는 대단히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자고로 수익성 없이, 예산을 쏟아부어야 하는 공공미술관을 설립해 일정 궤도에 올려놓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아는 미술전문가들은 아르코가 역사 저 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못내 섭섭해 합니다. 미술관은 만들고 끌고가긴 힘들어도, 없애는 건 참 간단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소장?중견 작가들의 문제적 작품을 소개하고, 참신하면서도 괄목할만한 기획전을 개최하면서 아카이브로써의 역할까지 수행했던 미술관이 사라지는 것은 대단히 큰 손실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은 “아르코미술관은 그간 공공성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등 미술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미술계의 든든한 기반이 사라질까 우려된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아르코미술관은 30돌을 맞아 ‘대학로 100번지’라는 제목의 기획전을 개막했습니다. 미술 본연에 충실한 진지한 작품들을 담고자 했던 아르코미술관의 30년을 되돌아본 이 전시에는 이승택(80), 김구림(73), 이건용(67), 박불똥(53), 홍경택(41), 사사(40), 구동희(35) 등 원로부터 신진작가까지 30명이 참여해 풍성한 미술제를 벌이고 있습니다. 대학로와 아르코미술관에 향수와 기억을 지닌 다양한 연령대 작가들이 총집결된 셈입니다.

출품작도 그림, 설치, 퍼포먼스, 텍스트 등 다양하며, 30년의 궤적을 독특하게 조망해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합니다. 이를테면 작가 Sasa[44]는 슬기와민과 함께 지난 30년간 아르코에서 열렸던 미술전시의 도록에서 인사말만 뽑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인사말 속엔 지난 30년간의 한국현대미술의 단면들이 켜켜이 녹아 있어 흥미롭습니다. 또 Sasa[44]는 아르코 전시도록 속 200여 작가의 얼굴사진(10~30여년 전 사진들이 많아 한결같이 풋풋하더군요)을 서로 겹치다가 사라지도록 해, 전시공간에 무수히 많은 작가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또 구동희(35) 작가가 만든 거대한 새 집 설치작품도 많은 이야기거리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공간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꾸미는 설치미술가 박기원(45)은 미술관 벽면을 투명한 에어튜브로 쌓았습니다. 에어튜브에 의해 높은 벽이 생기긴 했지만 투명한 공기 벽이어서 단절된 듯하면서도 안과 밖이 서로 소통하는 미묘한 아이러니를 드러냅니다.

이밖에 이승택과 이건용은 자신들의 작업세계를 하나의 퍼포먼스로 구현하는 등 건축가 고(故) 김수근이 설계했던 대학로 붉은 벽돌건물 속엔 요즘 재기발랄하면서도 도전적인 작업들이 생생하게 꿈틀대고 있습니다. 그저 지난 발자취를 연대기 순으로 쭈욱 늘어놓은 게 아니라, 향후 현대미술의 지향점을 제대로 짚어보기 위해 다채로운 실험을 한 셈입니다. 이번 ‘대학로 100번지’전은 우리 미술계에서 소금같은 역할을 했던 ‘아르코의 지난 30년 여정’을 반추하면서, 공공미술관의 존재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보게 합니다. 전시는 7월5일까지입니다. 02-760-4850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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