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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외에도 숨겨진 국민화가 많다"

2010-03-3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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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화가’하면 누구나 박수근 화백(1914-1965)을 떠올린다. 시골집 토담 같은 질박한 표면의 화폭에, 서민들의 삶을 정겹게 담아낸 박수근의 그림들은 우리의 정서를 대변한다.
그러나 박수근 화백 외에도 우리 근현대기에는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작가들이 적지않다. ‘황소의 작가’ 이중섭이 있는가 하면, 도상봉 오지호 장욱진 화백 등이 있다. 또 월북하는 바람에 크게 각광받지 못했던 최재덕 작가 등 다시금 돌아봐야 할 중요한 작가들이 적지 않다.

올해로 개관 33주년을 맞은 서울 관훈동의 가람화랑(대표 송향선)이 ‘한국근대미술명품전Ⅱ’를 통해 이들 근현대기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박수근 외에도 도상봉, 오지호, 장욱진, 박고석, 정규, 최재덕, 황염수 등 한국미술사를 빛낸 근현대작가 8명의 작품 30여점이 걸린다.


박수근作 빨래터


송향선 대표는 "올해는 춘곡 고희동이 서양화를 배우기 위해 일본 유학길(1909년)에 오른지 꼭 100년이 되는 시점이다. 이에 현대미술로만 쏠리고 있는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지난 2000년에 이어 두번째로 근대미술 명품을 모아 기획전을 꾸몄다"고 밝혔다. 이어 “박수근, 이중섭 외에도 우리 미술계에선 지난 100년간 주목할만한 작가들이 의외로 많음을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즉 서양화가 도입된지 한 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서양화가 한국에 어떻게 토착화됐고, 우리 작가들은 한국적인 정서를 서양식 그림에 어떻게 녹여냈는지 조명해보는 전시라는 것.

이번 특별전에는 위작논란이 법정공방으로 이어져 막바지 판결을 앞두고 있는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와 구성은 엇비슷하나, 표현은 약간 다른 ‘빨래터’가 공개되고 있다. 박수근 화백은 한 주제가 마음에 들면, 조금씩 구도를 달리 하며 여러 점 반복해 그리길 좋아해 ‘빨래터’는 지금까지 6점이 전해져 오고 있다. 이번 출품작은 지난 1975년 서울 문헌화랑에서 열렸던 ‘박수근 10주기’전에 나왔던 작품이다. 소장자는 당시 75만원에 이 작품을 구입해 지금까지 34년째 소장해왔고, 판매는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한다. 문제가 됐던 ‘빨래터’(낙찰가 45억원)보다 크기가 훨씬 작은(가로 15.8x33.4cm) 작품으로, 시세는 약 6억원대로 알려지고 있다.
또 1965년 5월 박수근이 작고한지 다섯달 뒤 중앙공보관에서 열렸던 ‘박수근 유작전’에 출품됐던 ‘절구질하는 여인’도 전시에 출품됐다. 이 작품은 박수근이 생전에 크게 흠모했던 밀레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
최재덕作 하얀집의 테라스

전시에는 국내 서양화 1세대 작가인 도상봉(19052-1977)의 작품도 나왔다. 백자 달항아리를 그린 작품 ‘항아리’(1955년작)를 비롯해, 도상봉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라일락’ 그림과 ‘장미’를 만날 수 있다. 도상봉은 ‘균형과 조화를 통한 미의 완성’이란 목표 아래 미의 본질에 충실해온 작가. 아카데미즘의 대표성을 지녀 격조가 있는 그의 작품은 고루하지 않은 것이 매력이다. 특히 조선백자에 담은 꽃을 그린 정물화는 도상봉 특유의 체취를 풍겨 오늘날 크게 사랑받고 있다. 작가는 때로 백자 한가지만을 화면에 담백하게 그려넣곤 했는데, 비어 있으면서도 꽉 찬 화면은 그가 얼마나 백자에 심취했는지 보여준다.

한국 인상파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는 오지호(1905-1982)의 작품은 ‘목련’과 ‘해경(海景)’이 출품됐다. 오지호는 인상파 기법의 전형성을 보여주면서도 한국 자연에 대한 애정을 밝고 건강하게 반영해왔다.

박고석作 쌍계사

도상봉에서 오지호까지가 ‘근대 서양화 1세대’에 속한다면, 이후 등장한 박고석, 박수근, 장욱진, 최재덕, 황염수, 정규 등의 작가는 ‘근대 서양화 2세대’로 분류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산의 화가’로 불리며 진중한 필치로 전국의 산을 그린 박고석(1917-2002) 작가의 ‘도봉산풍경’ ‘문경새재’ ‘쌍계사’ 등이 나왔다. 박고석은 산을 ‘바라보는 풍경의 대상’으로써가 아니라, ‘체험의 대상’으로 그려 그의 산 그림에는 생생함이 녹아들어 있다. 뭉클뭉클한 붓자국과 진득한 안료에 의한 두터운 마티에르가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 풍경화와 정물화가 출품된 최재덕(1916~?)은 역량에 비해 그동안 거의 조명되지 않은 작가다. 월북작가였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최재덕은 1930~40년대 탄탄한 실력을 지닌 작가로 평가됐었고, 이번 전시작인 ‘하얀 집의 테라스’, ‘어항’에서도 이를 여실히 살필 수 있다. 한편 강원도 고성 출신의 정규(1923~1971)는 일본제국미술학교에 수학하며 평론 등 미술이론에도 적지않은 업적을 쌓은 작가. 황염수, 유영국, 이규상 등과 교류하며 유화 뿐아니라 판화(목판)에서도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간결하면서 탄력있는 구성력을 보여준다. 이밖에 장욱진의 ‘관폭도’ ‘팔상도’, 황염수의 ‘장미’ 등도 이번 전시에 포함됐다.

미술평론가 오광수씨는 “올해로 국내에 서양화가 도입된지 한세기가 지나 할아버지 세대에서 손자세대에 이르렀다. 이는 서양화가 단순히 외래양식이 아니라 토착화됐음을 말해준다"며 "이번 근대미술명품전 출품작들은 한국작가들이 단순히 서양의 모방이 아니라 우리 나름의 감성에 맞는 그림을 완성하기위해 노력해온 과정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즉 한국미술의 정착과 확립이라는 집단적 완성에의 과정을 살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시는 당초 계획보다 일주일 연장돼 6월5일까지 열린다. 02)732-6170

▶가람화랑
은= 1977년 서울 인사동에서 두평짜리 작은 갤러리로 시작해 1991년 경인미술관 옆 한옥(관훈동 30-10번지)으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촐하고 정갈한 한옥 갤러리인 가람화랑은 전통문화의 거리 인사동과 꼭 들어맞는 갤러리로, 인사동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꼭 들러봐야 할 문화명소’로 꼽히고 있다. 가람화랑은 그동안 우리 근현대미술의 주요작가 초대전과 특색있는 기획전을 꾸준히 개최해왔다. 큰 목소리를 내진 않았으나 우리 미술계에서 꼭 짚어봐야 할 작가들과 작품을 알찬 전시를 통해 지속적으로 선보여왔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도상봉 천경자 박고석 김상유 등 유명작가 뿐 아니라 역량있는 중견및 젊은 작가들의 전시도 꾸준히 펼쳐왔다. 그동안 가람을 거쳐간 작가로는 민정기 심정수 김창세 김용철 이철주 이희중 한애규 최석운 박문종 서정국 최정화 김찬일 장영숙 서현진 박미현 등이 꼽힌다. 기획전으로는 1999년 10월 ‘다시 시작하는 정신의 풍경’, 2000년 12월 `한국근대미술명품전I`, 2002년 3월 ‘사군자-탈(脫)사군자’, 2004년 3월 `한국적 아름다움의 원형-박수근, 이중섭`, 2004년 11월 ‘화가의 꽃’, 2006년 5월 `동심의 초상’, 2007년 4월 ‘봄봄’ 전 등이 화제를 모았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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