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때 대통령 취임
유동성 확보 급한 불 꺼
민간ㆍ공공 고강도 개혁
중소ㆍ벤처기업 육성 성과
단기간 경제성장 기틀마련
카드사태등 심한 후유증도
“우리에게는 6ㆍ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고 할 수 있는 외환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잘못하다 가는 나라가 파산할 지도 모를 위기에 우리는 직면해 있습니다.” (1998년 2월 26일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사)
“경제적으로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 기업, 공공, 노사 등의 4대 개혁을 실행해 우리 경제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한국은 이제 IT(정보기술) 강국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게서 배워라’, ‘한국인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자랑할 권리가 있다’, 이런 많은 찬사도 받고 있습니다.” (2003년 2월 24일 김 전 대통령 퇴임사)
김대중 전 대통령. 그는 한국경제사에 ‘외환위기 극복’이란 뚜렷한 한 획을 남기고 떠났다. 사상초유의 국가부도 위기가 최고 절정에 달한 지난 98년 2월에 그는 청와대 직무를 시작했다. 달러 당 원화 환율 1965원, 외환보유고 단돈 39억 달러, 종합주가지수 379포인트. 최악의 경제성적표가 그의 취임을 전후해 쏟아졌다.
대통령직에 오르자마자 그는 치열한 경제전쟁을 치러야 했다. 한국경제 위기가 최고조였던 98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경제수석을 지냈던 강봉균 민주당 의원은 당시 김 전 대통령의 노력을 이렇게 전했다.
“98년 6월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세계 금융중심지를 찾아 경제인, 금융인을 만나 한국에 투자해달라는 설명회를 열었지요. 김 전 대통령은 잠시도 쉴 틈 없이 일정을 끌고나갔습니다. 조찬을 하고 오전 2군데 방문, 오찬을 하고 오후에 2군데, 그리고 만찬. 보통 오전, 오후에 한번씩 일정을 진행하는 것이 상식인데 말입니다. 연세가 적지 않으신데도 엄청난 일정을 소화하시더군요.”
‘국민의 정부’ 경제팀은 외환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등 국제기구로부터 350억 달러의 종잣돈이 들어온 후 외채만기 연장, 국내ㆍ외 소요자금 긴축 등 단기처방이 이어졌다.
국민의 정부가 끝나갈 무렵인 2002년 말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이었던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당시 기고를 통해 “IMF 경제위기가 단순한 외환유동성 부족 보다는 우리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에 기인한다는 인식 하에, 다각적이고도 단계적인 정책을 시행했다”고 설명했다.
외환 유동성 위기라는 급한 불을 끝 김대중 경제팀은 바로 기업ㆍ금융ㆍ공공ㆍ노동 등 4대 부문에 걸친 강력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종합금융사로 대표되는 부실 금융기관을 정리하고, 공적자금을 조성해 부실자산을 처리했다. 2001년 9월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만들어 상시적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는 틀을 만들었다. ‘빅딜(Big Deal)’로 대표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쳐 98년말 400%에 육박했던 30대 기업집단(대기업 그룹)의 부채비율을 2002년 4월 기준 138%로 떨어뜨리는 성과를 거뒀다.
공공기관 등 공공부문에 대한 고(高)강도 개혁도 진행했다. 비정규직 양산, 조기 퇴직자 양산이라는 문제점을 남겼지만 김대중 정부는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등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 정책도 다각도로 펼쳤다. 파탄 위기에 놓인 서민경제도 김 전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98년부터 3년간 20조원 규모의 실업대책이 쏟아졌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국민연금 확대 실시 등 사회안전망을 확대하는 기반정책도 추진됐다. IT을 중심으로 하는 중소ㆍ벤처기업 육성책도 강도 높게 진행돼 성과를 거뒀다.
이런 김대중 경제팀 노력의 결과, 우리경제는 세계가 놀랄만한 속도로 제자리를 찾는데 성공했다. 과감한 기업ㆍ금융 구조조정, 공적자금을 활용한 속도 빠른 부실 정리, 외채 정리와 외환보유고 확충을 통한 국가신용도의 신속한 회복 등 그는 한국경제를 위기에서 탈출시켜 이후 경제성장의 기틀도 만들어냈다.
관치(官治)금융, 빅딜 논란, IT 거품 붕괴, 2003년 카드사태 등 적지 않은 후유증도 남겼지만, 최악의 위기에 빠졌던 한국경제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김 전 대통령의 경제적 성과에 이견을 다는 이는 없다. 작년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 속에서 지난 98년 이후 그가 펼친 외환위기 극복 과정은 배워야 할 선례로 수 차례 주목받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떠났지만 그가 한국경제에 기여한 족적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