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로서 자신의 얘기를 써오다 이젠 뭘 쓰나, 할 게 없어진다고 할 시점에 두려움 같은 게 생깁니다. 소설을 못 쓸 것 같은 거죠. 이를 넘어서 내 얘기가 아닌 남의 얘기를 쓸 수 있게 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작품입니다.”
2005년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이후 4년 만에 엮어낸 네 번째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문학동네)를 내면서 김연수는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했다. 소설가이면서 “소설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여겼던 그가 이야기로써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소설의 가능성, 소통의 길을 찾은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늘 생각해 왔다. 스스로를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고 고백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데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읽고 위로가 됐다는 메일을 받으면서 그는 전혀 새롭고 놀라운 경험을 했다. 이후로 다른 사람과 한 얘기, 사회현상 등이 녹아들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LA폭동, 2008년 숭례문 불길, 2009년 용산의 불길, 어린 시절 중공기 납치 사건 등이 소설의 재료가 됐다. 그렇다고 김연수식 이야기법이 달라진 건 아니다. 겉으로 사회 문제나 이슈는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은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톱니바퀴일 뿐 형체조차 불문명하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는 바로 이들 불길 속에 내재된 소통의 의미가 미국여자 나와 번역가인 혜미의 불가능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드러난다. ‘달로 간 코미디언’도 시각장애인과 일반인의 소통을, ‘모두에게 복된 새해’는 인도인을 통한 나와 아내의 소통이라는 특이한 소통의 방식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하는 행위 자체가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은 작가에 따르면 우리 안에 불꽃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또 내 안의 불꽃은 외부의 영향을 받는다. 이런 영향을 주고받음이 그의 이번 소설집을 만들어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