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3D입체 영화 ‘아바타’를 보면서 관객들을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한번은 화려한 영상에 놀라서, 또 한번은 하품을 하느라.
한편의 첨단 영상기술 ‘시연회’였다.
11일 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는 3D 영화로서 기술은 초현대식이었지만, 이야기는 감흥없는 옛날식 ‘잡탕’이었다. 상상력은 20년전 영화인 ‘늑대와의 춤을’의 서사로부터 한발짝도 전진하지 못했고, 제나름대로 겉멋을 잔뜩 낸 메시지는 이런 저런 ‘상표’를 어설프게 흉내내는 데 그쳤다. 로맨스는 빈약했고 영웅주의는 따분했으며 정치풍자와 환경생태주의는 유아적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아바타’에는 ‘늑대와의 춤을’을 비롯해 서부영화와 베트남전영화에 대한 노골적인 인용도 엿보이고 최근 유행하는 진화생물학에 대한 관심, 심지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까지 섞여 있는 것 같지만, 이런 재료들이 혼합돼 만들어질 수 있는 가장 빈곤한 결과물을 뽑아냈다. 한마디로 눈요기는 있지만 감동은 없었다.
이런 평가는 외신도 다르지 않았다. 미국 매체인 AP는 시사회 후 즉각 올린 리뷰에 ‘놀라운 기술, 김빠진 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다소 냉소적인 논평을 던졌다.
“만약 어떤 영화가 이제부터 영화의 개념이 바뀔 것이라는 대담한 주장을 담고 있다면, 둘 중 한 가지의 반응이 얻을 것이다. 한편에선 그 ‘세계의 왕’(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타이타닉’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게 됐을 때 외친 수상소감)의 오만한 콧대를 꺾으려 할 것이지만 또 다른 편에선 ‘걸작이 탄생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워 룸’에서 하는 말처럼 ‘또 다른 옵션’은 없을까?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3D영화인 ‘아바타’는 혁명적인 영상효과를 썼다는 점에서 ‘놓쳐선 안될 영화’의 몇 가지 요건을 갖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실사영화로는 맥빠지고 실망스럽다.”
‘아바타’는 가까운 미래인 2154년, 자원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판도라라는 행성에 도착한 지구의 탐험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판도라 탐험을 주도한 기업은 행성의 원주민인 외계인 나비로부터 행성에 묻힌 값비싼 에너지원인 언옵타늄을 얻으려 한다. 키가 3m가 넘고 뾰족한 귀와 긴 꼬리, 파란 피부를 가진 나비족들을 설득하기 위해 지구인들은 ‘아바타’ 프로젝트를 세운다. 아바타는 인간과 나비의 DNA를 합성해 만든 생명체로 나비족의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과의 ‘신경망 접속’을 통해 행동한다. 주인공인 제이크 설리(샘 워딩튼)는 전투 중 하반신이 마비된 퇴역 해병으로 이 프로젝트에 가담하게 되고, 뇌를 통해 접속한 아바타를 통해 건강한 신체를 얻는다.
판도라 생태계를 연구하는 어거스틴 박사(시고니 위버)와 함께 아바타가 돼 나비족 속으로 침투한 제이크 설리는 종족의 혹독한 시험을 통과하며 나비의 전사로서 인정받는다. 나비의 공주의 네이티리(조 샐다나)와 사랑에도 빠진다.
하지만 판도라 행성을 탐험하는 기업에선 제이크 설리를 마땅치 않게 여기고 협상 계획을 바꿔 아예 나비종족을 강제로 쫓아내고 업옵타늄을 파내려 한다. 나비종족의 거주지를 철거하기 위해 거대한 ‘불도저’와 전투기, 기관총을 앞세워 그들의 보금자리를 깔아뭉개기 시작한다. 이에 분노한 제이크는 나비족의 일원이자, 전설의 전사로서 지구의 탐험대와 맞선다.
사람을 닮았지만 거대한 덩치에 다소 기괴한 모양의 나비족은 인디언이나 아프리카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전반적으로는 서부개척기 백인 병사가 인디언 속으로 들어가 동화된다는 내용의 ‘늑대와의 춤을’의 이야기 뼈대가 같다. 지구인들이 판도라의 정글을 향해 무자비한 폭격을 가하는 장면은 베트남전 영화를 닮았다. 제임스 카메론이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 1995년경이라고 하는데, 전반적인 상상력도 그만큼이나 뒤쳐져 있다.
다만, 판도라 행성의 정글숲이나 진기한 동물, 식물을 보는 재미는 있다. 러닝타임 162분이 아니라 한 시간 정도의 아이맥스 영화로 만들었으면 딱 좋았을 뻔한 영화다.
이형석 기자/suk@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