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만 원짜리 LCD TV를 60만 원에 사라고?”
정부가 야심차게 시작한 디지털TV 수상기 보급 사업이 시작부터 삐그덕 거리고 있다. 100% 디지털 방송 시대가 2년 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 디지털TV 수상기를 마련치 못한 국민들을 위해 양질의 제품을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혈세낭비라는 부작용만 만든 채 끝날 위기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8일 삼성전자와 LG전자, 대우디스플레이, MOTVCNC 등 4개사 9개 제품을 보급형 디지털TV로 선정했다. 20인치에서 42인치의 LCD TV를 최저 24만6000원에서 84만9000원의 가격으로 국민들에게 보급하겠다는 것이다. 또 LG전자의 경우 디지털 방송 수신이 가능한 브라운관TV 2종을 19만 원(19인치)과 34만 원(29인치)에 별도로 선보였다.
문제는 이들 제품 중 일부는 인터넷 및 전자 양판점 가격이 정부의 공모가격보다 더 싸다는 것. 이번에 보급형 디지털TV로 선정된 LG전자의 32인치 LCD TV(모델명 32LH20D)의 공모가격은 60만 원이지만, 이 제품은 현재 인터넷에서 55만 원에서 59만 원 사이에 충분히 구할 수 있다.
대형 LCD TV 구매에 부담감을 느끼는 영세 서민을 위해 선정한 2종의 브라운관 TV도 마찬가지다. LG전자의 29인치 브라운관 TV (모델명 29FS4DE)의 정부 공모가격은 34만 원이지만,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32만 원에서 33만 원 사이에 거래되고 있다. 가장 싼 가격으로 제법 수요가 클 것으로 정부가 기대하고 있는 21인치 디지털 브라운관 TV (모델명 21FU5DA) 역시 공고가격 19만 원보다 2만~3만 원 싼 가격에 시장에서 구매 가능하다. 특별히 저렴한 가격에 디지털TV를 보급하겠다며 방통위와 지경부 등 여러 부처의 공무원들이 모여 지난 수 개월 동안 공모를 받고, 심사를 통해 최종 9개 모델을 선정한 이유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국민의 세금이 낭비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방통위는 울진과 단양, 강진 등 디지털전환 시범지역에 거주하는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 및 차상위계층의 지상파 직접수신세대가 이들 보급형 디지털TV를 구매할 경우 10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해당 소비자 입장에서는 10만 원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 시중가 보다 비싼 가격의 제품을 구매할 수 밖에 없고, 결국 TV 제조사만 몇 만 원씩 비싸게 팔며 부당 이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TV 보급 사업이 시작부터 삐끗하는데는 TV가격에 대한 정부 관료들의 이해 부족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LCD 패널 및 주요 부품의 가격 편차가 크고, 또 경쟁이 치열해 시장 상황에 따라 한 달 사이에 10% 이상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도 많은 디지털TV 시장의 특성 상, 선정 당시 최저가는 의미가 없다는 것. 정부는 이 같은 가격 급변에 대비해 3개 월마다 심사를 거쳐 가격 변동 상황을 반영하겠다고 밝혔지만, 이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