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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날의 초상 그린 세편의 독립영화 화제
‘혜화, 동’

유기견 돌보는 20대女

아기 버린 상처·죄책감 치유


‘파수꾼’

아들의 죽음 밝히는 아버지

세친구 우정속 상처가…


‘무산일기’

탈북자 청년의 남한 정착기

88만원세대 모습과도 겹쳐




걸출한 독립영화 3편이 잇따른다. ‘혜화, 동’(감독 민용근ㆍ17일 개봉)과 ‘파수꾼(감독 윤성현ㆍ3월 3일), ‘무산일기’(감독 박정범ㆍ4월 7일)다. 하나같이 젊은 감독의 데뷔작이자 각종 영화제에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다. 일반 관객에겐 낯설 주ㆍ조연 배우는 영화 시작과 함께 관객에게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의 상처와 고통, 우리 사회의 이면을 매끄러운 화술과 촘촘히 엮은 드라마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격렬한 반전을 장전하고 굴곡과 고저가 확연하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긴장과 집중력을 잃지 않고 매 순간 관객에게 다음 장면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소재나 주제의식은 상업영화에서 찾기 힘든 독립영화만의 건강성을 잃지 않았으되, 스토리텔링은 상업영화의 평균적인 수준을 넘어설 만큼 세련됐고 힘과 기교가 좋다. 이 중 주류에서의 스타 탄생도 기대할 법하다.

▶젊은 날의 죄책감 ‘혜화, 동’

‘혜화, 동’은 남자와 아이를 모두 떠나보낸 어린 미혼모의 이야기다. 주인공 ‘혜화’(유다인)는 동물병원에서 일하며 유기견을 돌보는 20대 초반의 여자다. 홀로 사는 집을 여기저기서 데리고 온 10여마리의 유기견으로 채울 정도로 유난히 집착한다. 홀아비인 동물병원 원장의 어린 아들을 엄마처럼 품어주기도 한다.

어느날 그녀의 주위를 ‘한수’(유연석)라는 청년이 떠돌기 시작한다. 그가 개입하면서 흔들림없던 혜화의 삶이 가진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두 남녀는 서로 고등학생 시절이던 5년 전 연인이었고, 아이를 임신했다. 하지만 한수는 유학을 핑계로 도망쳤고, 혜화는 얼굴도 못 본 갓난아이를 떠나보냈다. ‘돌봄’에 집착하는 혜화의 행동은 이에 대한 보상이었던 것이다. 돌아온 한수는 ‘아이를 찾자’고 거듭해서 호소하고, 혜화는 이를 외면하지만 마음 한편에선 아이를 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애써 잊고 살았던 고통과 죄책감이 아이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되살아난다. 과연 이들은 아이를 찾을 수 있을까. 

독특한 매력의 여성 혜화를 중심으로 과거의 비밀을 하나 둘씩 풀어놓던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아이의 행방을 둘러싼 두 남녀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서 큰 반전이 일어난다. 몸에 상처를 입고 떠도는 유기견을 찾기 위해 큰 덫을 놓다가 그 덯에 옷이 걸려 옴쭉달싹 못하게 된 혜화와 그를 풀어주는 한수의 영화 초반부 에피소드처럼 상징도 리얼리티도 정교하다.

두 남녀는 인생의 덫에 걸린 셈이고, 젊은 날의 욕망이 남긴 고통과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모성과 당돌함이 얽힌 표정을 동시에 표현해낸 배우 유다인의 연기가 뛰어나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 독립스타상(배우 부문), 코닥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위쪽부터 민용근 감독의 ‘혜화, 동’,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

▶우정이라는 이름의 상처와 폭력, ‘파수꾼’

‘파수꾼’은 29세 청년감독 윤성현의 데뷔작이자 5000만원의 제작비가 든 저예산 영화라는 점만으로도 일단 눈길을 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제작연구 과정이 배출한 작품이다.

고교생인 세 친구의 이야기다. 그 중 한 소년이 죽었다. 영화는 죽은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 기태(이제훈)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찾아가던 중 아들의 방에서 발견한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속엔 아들 기태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동윤(서준영)과 희준(박정민)이 있다. 아버지는 아들의 두 친구를 만나려 하지만 동윤은 학교에서 자퇴해 행방을 알 수 없고, 희준은 이미 전학을 했다. 세 친구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는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 전 행적을 쫓는 현재와 세 친구 각각이 보냈던 과거를 교차시킨다. 세 친구는 서로에게 전부였지만 희준이 좋아하던 여학생이 기태에게 마음을 품고, 기태는 가족에 얽힌 상처 때문에 희준과 반목하면서 이들의 우정에는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들은 서로를 지켜주고 우정을 붙들어두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럴수록 이들은 더욱 큰 폭력의 상황으로 내던져지고 관계는 파국을 향해 간다.

이 영화는 미성숙한 존재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관계를 욕망할 때 일어나는 비극을 보여준다. 단일한 사건으로 달려가는 작품은 아니지만 우정과 친구라는 말 속에 가리워진 내밀한 상처와 권력을 드러내는 에피소드를 격자처럼 엮어가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과 로테르담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다.

▶잃을 것 없는 삶, ‘무산일기’

‘무산일기’는 지난해 2011년의 가장 뜨거운 독립영화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박정범 감독은 이창동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이 영화에서 자신이 직접 주연을 맡았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의 탈북자 청년이 남한에서 겪는 수난의 적응기를 그렸다. 지명 무산(茂山)이 무산(無産ㆍ가진 것이 없음)으로 더 읽히는 것은 주인공이 탈북자 청년이지만 ‘88만원 세대’의 초상과도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약삭빠르지 못하고 우직한 사내는 번번이 취업을 거절당하고 간신히 얻은 시급 2000원짜리 벽보붙이는 일마저 텃세를 부리는 동네 깡패에게 얻어터진 후 잃고 만다. “열심히 하갔습니다” 외에는 할 수 있는 기술도, 할 수 있는 말도 없는 이 남자는 무시당하고 걷어차이기 일쑤다. 그에게 희망은 오직 교회에서 만난 여인과 자신에게 방 한 칸을 내어준 동료뿐. 그러나 탈북자 사기사건에 연루되면서 이 남자의 운명은 극적으로 변한다.

‘파수꾼’과 함께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수상했으며 최근 열린 로테르담영화제에선 대상을 움켜쥐었다.

이형석 기자/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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