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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석부터 채동하까지…‘죽음의 그림자’는 늘 곁에
“한동안 뭔가 모르게 자꾸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을 때에요. 한 번, 정말 그만 살까 이런 생각도 하고 그럴 때 어차피 그래도 살아가는 거 좀 재밋거리도 찾고 살아봐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만든 노래입니다.”

고(故) 김광석(1964~1996)은 한 TV프로그램에서 ‘일어나’라는 노래를 부르기에 앞서 이러한 말을 했다. 그리고 시작한 노래에서 ‘봄의 새싹들처럼, 일어나’라고 ‘시대의 가객’은 불렀다. 다시 일어나 활기를 품으며 살아갈 희망을 노래했지만 그는 결국 대중의 곁을 떠났다. 그에게 드리웠던 죽음의 그림자는 일상에서, 노래에서 보여지고 있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워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서른 즈음에‘ 중)’라며 그는 청춘도 그렇다고 청춘도 아닌 나이의 이들의 빈 가슴을 건드렸다.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는 일상의 상실감과 허탈함, 그것은 삶의 헛됨으로 이어져가는 마음이었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등병의 편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등 이루 거론하기 힘들 만큼 수많은 명곡들을 남긴 채 가객은 떠났다. 햇살이 가득한 어느 평범한 일상에 문득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된 채로. 그가 남긴 마지막 곡은 ‘부치지 않은 편지’였다.

가수들은 노래를 남기고 배우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남기고 팬들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조용히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팬들은 뒤늦게 알아챘다. 언젠가부터 가수는 노래대로, 배우는 연기대로 삶을 산다는 말들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가수 장덕(1962~1980)이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라는 노래를 남기고 김광석 서지원보다 앞서 세상을 떠났던 것처럼 말이다. 

지난 27일에는 SG워너비 출신의 가수 채동하(30ㆍ본명 최도식)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본 도쿄에서 예정된 공연을 앞두고 있던 그는 갑작스레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리고 공연을 며칠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2002년 ‘글루미 선데이’를 발표했던 채동하다. 떠나간 연인을 아파하는 내용이었지만 이 곡은 193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발표돼 180여명의 잇따른 자살을 불러온 자살곡으로 유명하다. ‘글루미 선데이’로 가수활동을 시작한 채동하가 남긴 노래 가운데 지난해 9월 발표한 미니앨범 타이틀곡 ‘하루가 미치고’의 티저 뮤직비디오도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뮤직비디오에서 채동하는 자살 장면을 연기했다. 채동하에게도 드리워졌던 죽음의 그림자들이 그의 죽음을 말미암아 다시 고개를 들었다.

다중인격 환자를 통해 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마음을 다잡을 수 없는 애틋함과 괴로움 사이에서 서서히 스스로를 파멸해가는 인물을 연기한 것이다. 이 장면은 심의상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질 때에는 편집이 됐으나 이후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며 팬들 사이에선 많은 화제를 모았다.

너무 짧은 생, 스스로 마침표를 찍은 채동하는 우울증과 새 앨범 발매를 앞둔 두려움과 압박에 결국 이별을 택했다. 29일 오전 채동하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 죽음으로 먼저 다가선 배우들=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배우들도 이미 연기를 통해 죽음에 먼저 한 발 다가섰다. 살아있던 현실에서다.

‘만인의 연인’ 최진실(1968~2008)은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서 억척스러운 가정주부를 연기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에서 결혼 이혼 등 일련의 힘겨운 과정을 겪고 다시 돌아온 최진실을 여전히 톱배우 자리에 올려놓은 작품이었다. 드라마에서 최진실은 불치병을 앓았다. 매회 최진실의 연기들이 시청자들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작품이었으며 47%의 전국 시청률을 기록한 이 드라마를 통해 최진실은 그 해 ‘여자 최우수연기상’과 ‘네티즌상’을 받았다.

배우 이은주(1980~2005)가 떠난 이후 ‘베르테르 증후군’은 극심했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스물 다섯으로 팬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이은주는 출연했던 작품에서 죽음을 연기한 장면이 많았다. 이병헌과 함께 했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 등장하는 먼저 떠난 이, 사랑스러운 미술학도였다. 이은주가 남긴 마지막 영화 ‘주홍글씨’에서 그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팬들과 만났다. 열정적이고 독립적인, 하지만 파괴적인 사랑과 인생으로 자신을 몰고가는 인물을 연기하고 영화에서의 그녀는 죽음의 길을 걸었다. 자동차 트렁크 안에 감혀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을 연기하고 이은주는 ‘한동한 우울한 느낌을 벗기 힘들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밝고 생기넘쳤던 배우 정다빈(1980~2007)이 떠나자 팬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늘 사랑스럽고 애교 넘치는 모습으로 팬들 곁에 존재했기에 그 충격과 아픔은 배가됐다. 정다빈이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뮤직비디오였다. 백지영의 5집 타이틀곡 ‘사랑안해’가 바로 그것이다. 로드무비 형식의 이 뮤직비디오는 동성애 코드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현실은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으로 표현된다. 바다 위의 끊어진 다리 위에서 자살 암시 장면을 그리며 우두커니 서있는 장면, 너무 해맑은 미소 뒤로 숨은 눈물들이 팬들에겐 잊히지 않고 남아있다.

아시아의 톱스타 장국영(1956~2003)은 영화처럼 팬들의 곁을 떠났다. 호텔 24층에서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장국영의 유작은 ‘이도공간’이다. 이 영화에서 장국영은 정신과 의사로 출연해 혼신의 연기를 펼쳤으나 마치 자신의 앞날을 앞서 연기하듯 영화의 마지막, 고층 건물 옥상에서 투신자살하는 모습을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

수많은 별들이 떠났다. 잊힐 만하면 전해지는 그들의 소식에 팬들의 가슴엔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가수는 노래를 남기고 배우들은 연기를 남겼다. 생전의 그들에겐 남은 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삶과의 이별를 위한 단초들이 있어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떠나간 사람을 보내는 남겨진 사람들의 가슴엔 그리고 이제 먼저 간 이들은 알지 못하는 더 큰 기억과 흔적이 함께 남아있다.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아님을, 떠날 때에는 외딴 섬처럼 숨쉬었던 날들일 지라도 여전히 그들을 향한 아련한 그리움이 '함께' 하고 있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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