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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 국민의‘금 사재기’
나라가 망할 상황에 처했을 때 국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인 나라와 금 사재기를 한 나라가 있다. 바로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과 요즘 그리스 국민들의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번주 그리스 사태는 유로존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구제금융을 주는 데 지쳐 그리스에 추가 긴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지 않으면 당장 급한 120억유로 구제금융 5차분도 안 주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리면서 일촉즉발로 치달았다.

다행히 21일 그리스 의회에서 집권 여당이 과반수로 새 내각 신임안을 가결시키면서 이달 말 긴축안 통과도 청신호가 켜지자 국제금융시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됐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보여준 그리스 정치권의 반목이나 노조, 학생, 시민들의 모습은 유로존이 아무리 추가 구제금융을 계속 쏟아부어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날 그리스 의회로 시위대가 몰려가 추가 긴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은 물론, 한편에선 그리스 국민들이 금을 사재기하거나 다른 나라로 돈을 빼돌리기에 혈안이 돼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리스인들이 지난 한 해 동안 은행권에서 총 300억유로를 인출해 금을 사재기하거나 키프로스 등 다른 나라로 옮겼다고 전했다. 이 금액은 그리스 전체 예금액의 12.3%나 된다.

또 지금 유로존에서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민간 투자자들에게 만기 연장 방식으로 그리스가 2014년까지 갚아야 할 채무 중 300억유로를 지급 연기하는 방안을 놓고 독일과 프랑스, 유럽중앙은행(ECB)이 갈등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이럴 경우 그리스 국채를 부도 등급으로 매기겠다고 위협하고 있어 유로존도 해법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300억유로의 채무조정 방식이 해결되지 않아 아직도 그리스를 국가부도에서 건져줄 1200억유로 규모의 추가 지원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판에 그리스 국민들은 같은 규모의 돈을 빼내 금을 사재기하거나 다른 나라로 옮긴 것이다. 정치권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니 국민들 스스로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한심하다.

그리스는 지난해 5월 구제금융 사상 최대 규모인 1100억유로의 지원금을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받았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재정긴축이나 세수확대, 자구노력이 부실하게 이뤄지면서 다시 위기에 빠졌다.

한국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한국은 외환위기에 빠지자 IMF로부터 3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은 뒤 혹독한 구조조정과 주요 부실자산의 헐값 매각을 통해 대출금을 상환하고 IMF를 조기 졸업했다.

사상 초유의 외환위기 사태를 맞아 국민들은 몰려나가서 긴축정책 반대 데모를 한 게 아니라 장롱 속을 뒤져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다. 금 한 돈이라도 보태기 위해 장사진을 친 모습은 월스트리트저널 등 세계 주요 언론들이 경이로운 모습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그리스가 이번 위기를 넘겨도 5년 안에 부도날 확률이 80%라고 보며 그리스 대출에 대해 엄청난 프리미엄을 매기고 있다. 나라가 부도 위기에 처했는데 금 사재기를 하는 국민들에게 국제금융시장이 신뢰를 주기는 힘든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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