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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부자들은 왜 욕을 먹을까
해외부자는 통큰 기부로 존경받는데…
온갖 특혜누리면서 나눔엔 인색

일부선 “그냥 싫다…” 맹목적 불신감

정치권도 票의식 대기업때리기


지도층 ‘노블레스 오블리주’ 넘어

건전하게 벌어 건전하게 쓰는

“리세스 오블리주 시대 열어야”


대기업 하면 생각나는 단어가 뭘까. 홍준표 대표는 ‘착취’라고 했다. 정두언 의원은 트위터에 “부잣집 아들은 모두 디스크 환자”라고 올려 이들의 습관적 병역 기피를 꼬집었다. 모두 ‘부자당’이라고 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부자(개인이든 기업이든)에 대한 인식은 대충 이렇다. ▶관련기사 6·7면

해외에서는 부자들이 그렇게 존경을 받는다는데, 우리나라에선 공공의 적이다. 세금도 안 내고 가족에게 부를 대물림하는 사람들, 법 안 지켜도 아무 탈이 없고 오히려 잇속만 더 챙기는 1%의 괴물들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아무리 과징금 철퇴를 내리고, 국세청이 거액의 세금폭탄을 쏟아부어도 소용이 없다. 모두에게 평등한 법을 그들은 교묘히 이용해 빠져나간다. 국민들은 혀를 찬다. “우리에게 진정 존경받는 부자란 불가능한 것일까?”

감세정책 철회, 동반성장 압박, 기업 일감 몰아주기 제재, 중소기업 적합업종 강제 선정 등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대기업 때리기의 근저에도 이런 ‘존경받는 부자 부재(不在)’의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건전한 부, 건강한 부를 그대로 인정하는 선진사회와 달리, 우리는 부자 하면 뭔가 은밀하고 냄새가 나며 금목걸이를 차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택받은 이들이라는 거부감이 팽배하다. 왜 그럴까?

그 1차 책임은 부자들에게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일단 우리나라 부자들은 부의 축적에서 정통성이 없다. 사람들이 대부분 올바른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난해 한 조사에서도 우리 국민의 30%는 “부자가 되려면 부동산 투자를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부자와 투기를 동일선상에 놓는다는 얘기다. 


나눔에 인색하기 때문이라는 진단도 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부자들은 사회적 공헌도가 떨어진다. 부의 축적은 개인 능력에 달려 있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 인프라의 도움을 받은 것이므로 과감하게 나눠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약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한국 부자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이유로 다음 5가지를 얘기한다. ▷탐욕 ▷부도덕 ▷군림 ▷인색 ▷무임승차.

사람들은 몹쓸 부자들이 하나라도 더 갖겠다고 탐욕스럽게 돈에 물불 안 가리고, ‘울타리 경영’속에 자기들끼리만 부를 나눠먹는다고 생각한다. 탈세, 비자금에 병역기피 등 부도덕의 극치 속에 산다고 믿는다. 권력화된 귀족주의에 덧칠돼 없는 자에 군림하려는 모습을 비판한다.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한 채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서 교묘히 법을 자의적으로 이용해 온갖 특혜와 열외를 향유한다고 확신한다.

여기에 무시 못할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냥… (싫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건 못 참는다고 했던가. 고위관료들 재산신고에서 나타나는 수십억, 수백억원. 도저히 정상적으로는 불가능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현실에 분노하고 좌절한다. 그런 부자들이 돈을 버는 것도 얄밉고 펑펑 써대는 건 더 꼴사납다.

이런 인식을 하루아침에, 한두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는 없다. 이른바 ‘건강한 부’의 환경과 그 축적 기간이 필요하다.

부자에 대한 국민들의 일반적 선입관을 바꾸는 노력과 동시에 부자들도 사회의 마음을 얻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

‘정승’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로는 부족하다. 사회지도층의 도덕과 책임을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넘어, 이제는 건전하게 벌어들인 재산을 건전하게 사회를 위해 쓰는 리세스 오블리주(richess oblige)가 큰 가치로 다가온다.

13~17세기 피렌체공화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으로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메디치(Medici)家는 ‘늘, 한결같은, 변하지 않는’ 의미의 라틴어 셈페르(semper) 정신을 실천했다. 그러나 346년 동안이나 부와 명예, 권력을 누린 이 가문이 손가락질을 받고 회복할 수 없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은 ‘오만한 후손’들 탓이었다.

부자가 존경받지 못하면 언제든 몰락할 수 있음을 메디치가는 보여줬다. 메디치가의 흥망성쇠의 역사 속엔 ‘칭송’받는 부자가 되는 비법이 담겨 있다.

김영상ㆍ이상화 기자/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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