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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지전’ 고창석 “벤츠타고 다니는 줄 알지만 이제 경차 한대”
요즘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바쁜 배우. 흥행순도가 높아 감독도 제작자도 목을 빼고 기다리는 명품조연. 그리고 ‘딸바보’. 누가 생각나시는지. 아마도 고창석(41)과 김인권(33)을 떠올리셨다면 당신은 한국영화를 꽤 잘 알고 있는 관객일 가능성이 높다. ‘출신’도, 연기스타일도 다르고 나이도 꽤 차이가 나지만 묘한 공통점을 가진 두 배우를 차례로 만났다.

‘충무로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라는 세간의 평답게 두 배우는 여전히 ‘촬영 중’이었고, 인터뷰를 위해 잠깐의 짬을 내 서울 삼청동을 찾았다. 고창석은 공교롭게 같은날 개봉한 한국영화 대작 ‘고지전’과 ‘퀵’에 출연했고, ‘Mr. 아이돌’의 촬영을 끝냈으며 ‘미스고 프로젝트’를 찍고 있으며 ‘시체가 돌아왔다’를 앞두고 있다. 김인권은 출연작 ‘퀵’이 개봉중이고 ‘마이 웨이’의 촬영을 끝냈으며 ‘타워’는 촬영 중, ‘구국의 강철대오’는 대기 중이다.

▶‘난 근본없는 잡놈’ 고창석

흥행경쟁작인 ‘고지전’과 ‘퀵’에 ‘동시출연’ 하다보니 민망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한번은 인터뷰 사진촬영을 위해 삼청동 한 카페의 옥상에서 열심히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저쪽 건물에서 누가 불렀다. “창석이 형!”. 신하균과 장훈 감독이었다. ‘고지전’팀의 눈총 아닌 눈총을 을 받으며 ‘퀵’ 출연배우로서 인터뷰를 해야 했다. 

고창석은 ‘고지전’에선 일제 시대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다 해방 후 한국전쟁이 터지자 국군으로 참전한 백전노장 상사로 출연했다. ‘퀵’에선 폭주하는 오토바이 퀵 서비스맨을 추격하며 그를 둘러싼 폭탄테러 음모를 수사하는 형사 역할이다. ‘고지전’의 장훈 감독과는 ‘영화는 영화다’와 ‘의형제’에 이어 세번째 작품. ‘고지전’의 출연이 먼저 확정됐고, ‘퀵’은 나중에 제안을 받았다. 

촬영일정도 겹쳐 고창석은 고사했지만 ‘퀵’의 제작자인 윤제균 감독이 직접 영화계 후배인 장훈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고지전’ 일정에 맞출테니 우리 영화에도 빌려달라”고 했고, 결국 두 편의 작품에 주ㆍ조연배우로서 참여하게 됐다. 두 영화의 조감독들이 고창석의 촬영스케줄을 서로 조율하느라 머리를 맞댈 정도였다. 그 결과 고창석은 “‘퀵’에 가서 ‘고지전’얘기하고, ‘고지전’으로 만나 ‘퀵’을 말하는 ‘박쥐’ 신세, 우산장수와 소금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심정이 돼 버렸다. 이제 한국영화에선 ‘고창석이 없이는 안되는 역할’들이 점점 늘고 있다.

“다들 벤츠타고 다니는 줄 알아요, 작년에 모닝 한 대 샀습니다.”

주변에서 ‘로또’를 맞은 것처럼 오해할만큼 최근 2년간 고창석의 입지는 ‘욱일승천’의 기세로 솟아올랐다. ‘영화는 영화다’ 이후 10편 가까운 영화에 출연했고 대사와 비중은 점점 늘어 주연작도 있었으며 2년여전 100만~200만원하던 출연료는 껑충 뛰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연기 시작 10여년만에야 맞은 전성기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이제야 “연기만 해서 밥먹고 살 정도”가 됐다.

“말하자면 근본없는 놈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까지의 경험들이 다 연기의 바탕이 되는 것 같습니다.”


고창석은 일본어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 장사나 할 생각”이었지만 재학 중 탈춤동아리에서 활동한 게 계기가 돼 지금까지 오게 됐다. 당시 대학가를 지배하던 분위기대로 ‘문예운동’으로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으며 몇 년 후엔 아예 학교까지 그만두고 전문 노래패 단원이 돼 집회나 대학축제, 파업현장을 쫓아다녔다. 

당시 고 김광석과 안치환, 임수경과도 만나 친분을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20대를 보낸 후 좀 더 본격적인 연기수업을 위해 서울예대에 진학했고, 졸업 후 대학로에서 마임극단을 운영하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 20대에는 철강공장이나 김양식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한번 배를 타면 한두달 걸리는 선원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30대엔 각종 이벤트연출도 마다하지 않았다.

고창석은 “대학로에서 활동할 때도 시골극단의 어느 배우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TV나 영화의 누구보다 열등하다고도 여긴 적이 없다”며 “동료들과 관객들에게 인정받는 배우로서 오랫동안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감독을 꿈꾸는 학구적인 배우’ 김인권

다른 이들보다 빨랐다. 결혼도 빨랐고 출산도 일렀다. 30대 초반에 벌써 7살, 5살, 3살, 딸만 셋이다. 장편영화데뷔도 스물 한 살 때(‘송어’), 스물 두 살엔 제법 큰 작품(‘아나키스트’)에서 주조연급 역할도 맡았다. 스물 세살 때엔 학교 졸업작품(동국대 연극영화과)이지만 어엿한 장편영화를 연출해 감독으로서도 데뷔했다. 어린 시절부터 1년에 4~5편씩 교회 성극을 하면서 다졌던 배우ㆍ감독으로서의 꿈이 쉽게 이루는가 했지만 빠른 출발이 평탄대로를 약속하진 못했다. 

‘조폭마누라’ ‘말죽거리잔혹사’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주목을 받고 이를 뒤로 하고 입대, 지난 2006년 11월 군 복무를 마치고 나왔지만 이미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김인권은 당시를 회고하며 “영화계에서 나는 완전히 잊혀져 있었다”며 “연예인이든 영화배우든 주변에서 안 찾아줄 때는 그저 백수일뿐”이라고 말했다. 이미 큰 딸을 낳고 둘째는 뱃속에 있는 식구의 가장이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산을 다니는 일이었다. 비탈을 하나씩 오르며 계단 하나에 “영화출연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주문처럼 되뇌었다. 

그러던 중 2007년 윤제균 감독이 불러 “저는 인권씨의 연기를 죽 지켜봐왔습니다. 당신이 대성 할 것이라 믿습니다. 같이 영화를 하고 싶습니다”며 ‘색즉시공3’의 주연을 부탁했다. 영화는 결국 무산됐지만 당시 눈물나게 고마웠다. 이 때 인연으로 김인권은 ‘해운대’에 출연해 영화 속 가장 인상적인 ‘콘테이너 신’과 ‘구두 한 켤레’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해엔 ‘방가? 방가!’에서 취업난 때문에 동남아 이주노동자로 위장한 주인공 한국인 청년 역할을 맡아 흥행에도 성공했다. ‘퀵’에선 이민기와 강예원의 뒤를 쫓는 교통경찰 역을 맡아 특유의 코미디 연기를 보여준다.

“제가 감성이 뛰어난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맥락과 패턴에 맞춰 제가 분석한 캐릭터의 목표치에 접근해가는 스타일이죠. 예를 들어 ‘타워’에서 맡은 소방관 역할을 위해서는 실제 소방관 훈련을 체험하기도 하고, 소방관에 관련한 각종 기사와 자료를 읽습니다. 소방관이 나오는 영화도 모조리 봅니다. 여기에 제 경험을 녹여내 시나리오에 가장 맞는 소방관상을 창조하는 식입니다.”

김인권은 데뷔작인 ‘송어’에서 연기를 위해 캐릭터를 분석한 문서를 50페이지가 넘게 작성했고, ‘아타키스트’에서 30페이지를 빽빽하게 채웠다. 그만큼 학구적이고 분석적인 배우로 정평이 났다. 주연으로서의 긴 호흡이든, 조연으로서의 인상적인 몇 장면이든, 자신이 맡은 인물을 반드시 관객의 뇌리에 남는 캐릭터로 만드는 힘이 여기서 나왔다. 감독으로서도 구체적인 작품 제안을 받기도 한 김인권은 “배우로서든 감독으로서든 강렬한 캐릭터 코미디영화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고창석)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김인권)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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