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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이 내린 ‘풍요로운 와인 땅’, 美나파밸리를 가다
 [나파밸리(미국)=김영상 기자]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80번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20분 달리다보면 끝이 없는 포도밭(빈야드ㆍVineyard) 장관이 펼쳐진다. 1에이커(약 1224평)에서 5에이커(약 6320평) 정도 넓이의 포도밭 행렬은 경이롭다. 캘리포니아 햇볕에 총기를 머금고 반짝이는 포도알은 너무 붉어 톡 터질 듯하다.

나파밸리(Napa Valley)다. 나파밸리는 ‘포도를 위한 천국’ ‘풍요의 땅’ 등으로 불린다. 포도가 자라기에 너무나 훌륭한 기후 조건과 토양 조건으로 ‘신이 나파에 와인을 선물했다’며 전 세계 와인산지가 질투하는 곳이기도 하다.

컬트 와이너리(Cult Wineryㆍ수요가 넘치는 데도 최고급 소량으로 승부하는 와이너리)로 유명한 콜긴의 앨리슨 타지엣 와인메이커는 “우리는 신이 주신 와인의 땅에서 겸손하게 수확할 뿐”이라고 했다. 대단한 긍지가 엿보이는 말이다.

▶신이 내린 와인의 땅, 나파밸리=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북동쪽으로 89㎞ 지점에서 시작되는 나파밸리는 대도시와 가장 가까운 곳에 형성된 세계적 산지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산지다. 북서 방향 50㎞로 쭉 뻗어있다. 캘리포니아 포도밭 면적은 총 47만에이커인데, 나파 지역의 포도밭 면적은 4만3259에이커를 차지한다. 생산량으로 치면 약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지만 판매액 기준으로 본다면 나파지역은 캘리포니아 와인 판매액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최고급 품질로 값비싼 와인을 생산해 팔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나파의 와인은 최고가다. 유명 와이너리(포도밭과 양조시설을 갖춘 곳)에 생산한 레드와인 카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과 화이트 와인인 샤도네이(Chardonnay)는 1000달러 이상을 넘기도 한다.

헬레나 산맥에서 내려다본 나파밸리 전경. 수많은 포도밭이 바둑판처럼 널려있는 나파밸리 빈야드(Vineyard)를 보면 경이로움과 함께 신이 내린 최고의 ‘와인 땅’이라는 경탄이 저절로 나온다.
나파밸리 포도밭에 재배되고 있는 적포도 카베르네 쇼비뇽 품종.


왜 나파밸리 와인이 유명할까. 일단 포도의 천국이다. 태평양 바다 기후는 습도 증가와 함께 오전 안개로 인한 냉각효과(Cooling Effect)를 선사해준다. 하루 종일 내리쬐는 캘리포니아 햇볕은 포도에게 튼실한 생명력을 제공하며, 강우량은 연중 57.5~150㎝로 적당하다. 포도밭은 고도 92~370m에 위치, 땡볕과 서늘함을 동시에 만끽한다. 헬레나 산맥(st. Helena) 분화로 인해 나파밸리 포도밭은 황토색이면서도 화산재(자갈)가 가득하다. 물이 많으면 포도에 치명적이다. 이같이 배수가 잘되는 나파밸리 토양 속에 포도는 집중적으로 당도(Sugar Content)를 키워간다. 최고의 와인을 위한 최고의 포도가 나파밸리엔 빼곡한 것이다.

나파밸리는 물론 원래 나파밸리 사람들의 땅은 아니었다. 나파밸리는 한때 수천명에 달하는 와포(Wappoㆍ풍요를 뜻하는 말) 인디언들의 고향이었지만, 지금 인디언의 흔적은 거의 없다. 오늘날은 나파밸리 사람들과 포도만 있을 뿐이다.

▶포도ㆍ와인 없이는 못사는 나파밸리 사람들=나파시 유명한 일본식당인 모리모토(Morimoto) 곳곳엔 포도나무 화석이 걸려 있다. 포도는 나파밸리 이방인에게도 이처럼 자긍심이다. 

나파밸리 포도밭에 재배되고 있는 백포도 샤도네이 품종.


나파밸리 사람들에겐 와인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러더포드 그릴(Rutherford Grill) 레스토랑엔 오후 6시부터 붐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30분 이상 기다리기 일쑤다. 대체로 중후한 연령의 손님들은 음식을 시키기 전 와인을 주문하고 음미한다. 와인의 맛, 색깔, 브랜드 얘기로 떠들썩하다.

나파밸리 식당은 유명하다. 미국 ‘베스트 10’ 식당도 몇 개 끼어 있다. 와인과 어울리는 메뉴 개발이 식당의 명성을 점차 높여왔다. 레스토랑에 모인 이들 중엔 ‘와인메이커(Wine Maker)’들이 상당히 많다. 와인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보다 나은 품종을 개발하기 위한 사교모임이다.

나파밸리에선 수많은 품종이 재배되고 있지만 나파밸리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포도는 ‘카베르네 쇼비뇽’(적포도)이다. 샤도네이와 쇼비뇽 블랑, 메를로, 진판델도 탁월한 와인으로 양조되지만 나파밸리 사람들은 특히 카베르네 쇼비뇽을 사랑한다. 나파밸리 시민들은 경사스러운 날, 특별한 날이면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 500~1000달러의 카베르네 쇼비뇽을 기꺼이 내놓는다.

나파밸리 사람들은 대부분 부유하다. 미국이 잘사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소득이 3만달러 정도인데, 나파밸리는 5만달러다. 신이 주신 풍요의 땅을 잘 관리하고 열매를 소중히 딴 노력에 대한 보상이다. 그런 만큼 나파밸리 농업용지는 미국에서 가장 비싼 땅이다. 최상급 부지에 있는 포도원 1에이커는 13만달러에 이른다.

이같이 부유함을 가져다 주는 와인과 와인 잡(Job)에 대해 나파밸리 사람들은 신성시한다. 나파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패밀리’ 중 하나인 팀 몬다비 와인메이커를 만나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와인이 없었다면 어떤 일을 했을까요?” 돌아오는 답이 걸작이다. “와인 없는 삶, 그런 게 있나요?”

이방인들이 나파밸리에 가면 한없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곳곳에 포진한 와인 성지와 유명 와이너리에 들어가면 무한대의 열정과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동행한 이용문 소믈리에(롯데호텔 식음팀 캡틴)의 느낌도 같다. 그는 “프랑스 와인산지를 가봤는데, 나파밸리는 포도 재배 방식, 품종, 와인생산 방법 등이 한층 자유로운 것 같다. 그것이 창의적인 나파밸리 와인의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품종이나 재배 방법이 틀에 박히지 않았으며, 프랑스처럼 많은 규제가 없는 것 같아 독창적인 맛을 낼 수 있는 것 같다는 게 그의 말이다.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와인을 ‘병 안에 든 시(bottled poetry)’로 불렀다. 와인은 상품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뜻이다.

나파밸리 사람들에게도 와인은 진열대 물건이 아닌 삶 그 자체다. 1880년대 골든러시 때 많은 유럽인들이 미국에 들어오면서 광활한 땅을 윤택한 포도밭으로 만든 땀을 잊지 않고 나파밸리 사람들은 130년 전의 조상들을 경배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작업복을 입고 포도밭에 가 안개를 맞으며, 또 잠시 후엔 캘리포니아 땡볕을 온몸에 껴안으며 묵묵히 포도를 어루만지며, 저녁에는 정장에 넥타이를 한 채 와인사교 모임에서 ‘와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게 이들의 일상이다.

그래서 나파밸리 와인엔 인생의 그윽한 맛과 철학이 담겨져 있다. 와인의 기억은 나파밸리에서 한층 더 영글고 있다.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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