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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받는 기업>‘와인천국’ 나파밸리에 가니 상생이 널려 있네
[나파밸리(미국)=김영상 기자]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산지, ‘신이 선물한 와인의 땅’으로 불리는 나파밸리에 가면 장엄한 포도밭(Vineyard) 행렬이 펼쳐진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우리나라 인삼 밭 등처럼 울타리가 없다. 포도밭이 도로 옆에 바짝 붙어 있더라도 경계선이 없다. 남의 밭은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지역 주민들의 공감대가 ‘열린 포도밭’ 광경을 볼 수 있는 배경이다.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내 포도 품종이나 토양에 대해 언제든지 공개한다는 게 나파밸리 와이너리(포도밭과 양조시설을 동시에 갖춘 곳)의 표방점이다. 시음을 원하면 100~200달러짜리 와인도 기꺼이 내놓는다. 와이너리마다 와인 사업자와 방문객들이 줄을 잇는다.

물론 이유는 따로 있다. 산맥 헬레나(St. Helena) 화산 폭발로 나파밸리 전역은 황토흙과 화산 지진재가 섞여 있는 최고 등급의 포도경작 토양을 갖고 있지만, 그 위치에 따라 토양 특성은 완전히 다르다. ‘내 포도밭을 공개한다고 해도 토양이 다르기 때문에 참고만 할 뿐, 와인비결을 훔쳐갈 순 없다’는 확신이 와인 메이커들에겐 확고하다. 

나파밸리 유일의 한국기업 와이너리인 다나 에스테이트에서 멕시코 근로자들이 포도를 손으로 소팅(Sorting)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자기 와인 비법을 향후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사업자에게 서슴없이 공개할 수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캘리포니아 특유의 오픈 마인드와 미국 서부 개척사와 함께 해 온 협업(Collaboration)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나파밸리 최고 와인 가문인 팀 몬다비는 “와이너리를 찾는 방문객이나 와인 사업자들에게도 아낌없이 우리 포도 품종에 대해 설명해준다”며 “그들이 와인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하면 나파밸리가 번성하게 되는 것이고 그들이 크면 우리 경쟁력도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파밸리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반성장이나 상생 개념은 없다. 협업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같은 협업의 중요성은 ‘더불어 사는’ 동반성장과 목표점이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배울만한 교훈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보인다는 평가다.

나파밸리 최고의 와인가문인 컨티늄 와이너리를 찾은 방문객들이 포도밭 토양과 와인 품질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있다.

나파밸리에서 유일한 한국기업으로 최고급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다나 에스테이트의 와인메이커 카메론 바우터는 “나파밸리 와이너리들은 서로 교류하고 협조하는 상호협력(상생)의 문화가 오래전부터 몸에 베어있다”며 “지난 1976년 캘리포니아산 와인이 프랑스 와인과의 시음테스트에서 승리한 ‘파리의 심판’이 가능했던 것도 이같은 협업문화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에 들어오는 고급 와인 온다도로(Onda d’Oro)와 바소(VASO)를 생산하는 다나 에스테이트 역시 현지 와이너리들과 같은 긴밀한 협업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포도밭 관리는 ‘실버라도 파밍 컴퍼니’를 활용하며, 블렌딩 전문가와 컨설턴트 등과의 협력에 적극적이다. 고도의 수작업이 필요한 공정에는 멕시코 근로자 등을 고용해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나파밸리의 컬트와인(수요는 넘치지만 최고급 소량으로 승부하는 와인) 생산으로 유명한 콜긴이나 쉐이퍼 등도 마찬가지다.

나파밸리는 지역사회를 떠나서 숨쉴 수 없다. 주민 대부분이 포도와 와인을 생각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구조이기때문에 와인 파트너십은 일상의 삶이다.

리무진을 타고 나파밸리 유명와이너리를 찾은 방문객들이 와이너리 관계자로부터 포도 품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나파밸리에서 활약하고 있는 와인 메이커나 와이너리 경영자는 인근 지역 대학 출신이다. 와인 전문가를 배출하고 있는 UC 데이비드와 UC 프레스노 대학은 나파밸리 와이너리와 강력한 산-학 연계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있다. 대학은 토양연구와 포도 품종 개발 연구를 맡으며, 와이너리는 와인산업 인재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나파밸리가 ‘신이 선물한 최고의 와인 땅’이라는 닉네임을 부여 받으며 프랑스 못잖게 와인 명소로 등극한 것은 이같은 산학협력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물론 캘리포니아 특유의 개방형 ‘멜팅포트’(Melting Potㆍ인종이나 문화의 융합) 문화가 와인산업에도 흘러 들어갔기에 나파밸리 와인업계가 연구와 개발을 거쳐 세계 최고 품질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내 마니아층도 두터운 명품와인인 피터 마이클 와이너리 경영자는 “우리는 이방인을 낯설어 하지 않는다. 나파밸리 와인맨이 되고 싶다면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했다.

다나 에스테이트 와인메이커가 포도밭에서 수확을 할 수 있는지 포도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나파밸리에는 우리처럼 거창한 구호인 동반성장은 없다. 나파밸리 와인사업자들은 굳이 상생을 하겠다고 떠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어떻게 하면 협력 그물망을 갖춘 이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지 그 지혜를 갖고 있으며 묵묵히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나파밸리가 ‘보이는 동반성장’에 다소 치중하고 있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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