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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태준 별세> “본인 명의 집도, 주식도 없었다”
본의 명의로 된 집도 주식도 없었다. 사욕 없는 삶을 살았다는 지인들의 말처럼 13일 별세한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개인 명의로 남긴 재산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명전 삼정KPMG 부회장은 이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빈소 앞에서 유족 측을 대신해 "박 회장님 본인 명의의 재산이나 유산이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박 회장님은 (예전부터) 개인적으로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다. 본인 명의의 집도 없고 주식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브리핑했다.

김 부회장은 이어 "평소에도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다"면서 "큰딸의 집에서 살면서 생활비도 자제들의 도움으로 마련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유언으로 "포스코가 국가경제 동력으로 성장한 것에 대해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더 크게 성장해 세계 최고가 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고, 임직원들에게는 "애국심을 가지고 일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김 부회장은 전했다.

또 가족들에게는 "고생시켜 미안하다. 화목하게 잘 살아라"라는 뜻을 전했으며 "포스코 창업 1세대들 중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다"는 심경도 밝혔다.

박 회장의 임종을 1남 4녀의 자제 중 차녀 유아 씨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지켰으며 세브란스병원 특실1호에 마련된 빈소에는 박 회장의 별세를 애도하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박태준 명예회장이 걸어온 길>

- 1927년 경남 동래군 장안면(현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임랑리에서 박봉관(부)과 김소순(모)의 6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음력 9월 29일)

- 1944년 (17세) 일본육사 입교 권유 거부. 와세다대 공대로 진학 결심. 소결로공장에 노력봉사 대원으로 배치, 제철과 처음 인연을 맺음.

- 1946년 (19세) 와세다대 기계공학과 2년을 마치고 중퇴.

- 1948년 (21세) 부산 국방경비대에 자원. 남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6기 생도로 선발되어 입교. 제2중대장으로 탄도학을 강의하던 박정희 대위와 만남. 육군소위로 임관(7월 28일)해 육군 제1여단 제1연대 소대장으로 부임.

- 1953년 (26세) 육군중령으로 5사단 참모. 화천수력발전소 방어를 위한 중공군과의 교전 지휘(부연대장). 5사단의 지리산 잔비토벌 작전을 위한 부대이동작전 수립 뒤 11월 육군대학 입교.

- 1954년 (27세) 육군대학 수석 졸업. 육사 교무처장 부임, 진해에서 태릉으로 육사이전계획수립. 12월 20일 장옥자와 결혼. 후배 장교 황경노와 만남.

- 1957년 (30세) 장녀(진아)출생. 10월 박정희 장군(1군단 참모장)과 재회. 25사단 참모장으로 옮김.

- 1961년 (34세) 5∙16 발발. 박정희의 배려로 거사명단에서 빠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국가재건최고회의 재정경제위원회 상공담당 최고위원 취임. 차녀(유아)출생. 육군준장 진급.

- 1963년 (36세) 박정희의 정치참여 요청 거부하고 미국 유학 준비. 3년(근아)출생, 육군소장으로 예편.

- 1964년 (37세) 박정희의 강력한 요청으로 미국 유학 포기. 일본 특사로 훗카이도에서 규슈까지 일본 전역 10개월간 순방. 야스오카와 초면. 대한중석 사장으로 발령(12월 8일)

- 1965년 (38세) 육군 경리장교 황경노, 노중열, 홍건유 등 합류. 대한중석 1년 만에 흑자체제로 전환. 박정희 요청, 일본 최고 제철소 가와사키제철소 견학. 종합제철 프로젝트에 관심. 4녀(경아)출생.

- 1967년 (40세) 정부와 KISA 종합제철소 건설 가협정 조인(4월 6일). 종합제철건설사업추진위원장에 임명, 박정희 ‘제철공장 완수’ 특명.

- 1968년 (41세)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사명 확정(영문 약자표기 ‘POSCO’) 및 창립식(4월 1일) 개최. 초대 사장 취임. 고준식, 황경노, 노중열, 안병화, 곽증, 장경환 등 대한중석 인재 대거 합류. 영일만에 건설사무소(룸멜하우스) 개설. 공장부지조성공사 착수. 사원주택단지 매입 및 건설 착공.

- 1969년 (42세) 1월 하순 KISA 차관 약속 사실상 무산 확인. 대일청구권 자금 잔여금 포항 1기 건설자금 전용 발상(하와이 구상). ‘3선개헌안 지지성명’ 동조서명 요청거부. 연수원 개원 및 기술자 해외연수 파견. 한일 각료회담에서 종합제철 건설지원 원칙과 대일청구권 자금전용 원칙 합의. 일본조사단 영일만 방문, 종합제철건설 자금조달을 위한 한일

기본협약 체결(12월 3일)

- 1970년 (43세) 박정희 설비구매에 관한 재량권 위임(일명 ‘종이마패’). 도쿄연락소 설치. 포항1기 건설착공(4월 1일). 열연공장, 중후판공장 착공(오스트리아 푀스터 차관).

- 1971년 (44세) 재단법인 제철장학회 설립. 효자제철유치원 개원. 제선공장, 제강공장 등 주요공장 착공. 호주와의 원료구매 협상에서 일본과 대등한 조건의 장기공급계약 체결.

- 1972년 (45세) 영일만의 첫 공장으로 증후판공장 준공(7월 4일), 첫 제품 출하(7월 31일). 포철 후판제품 첫 미국 수출. 본사 포항으로 이전(서울은 서울사무소로 존속).

- 1973년 (46세) 제1고로 첫 출선 성공(6월 9일), 포항1기 설비 종합준공(7월 3일), 일관.종합제철공장 완공(연산 조강 103만 톤 체제). 포항2기 건설 종합착공.

- 1981년 (54세) 사단법인한일경제협회 회장 피선. 포항4기 설비 종합준공(연산조강 850만 톤 체제 확립). 포철 초대 회장 취임(사장 고준식 취임) 포항제철고등학교 개교. 제11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민정당) 비례대표 당선, 국회 재무위원장 피선. 포항 4기 2차 설비착공. 새 정부와의 긴 씨름 끝에 제2제철소 입지를 광양만으로 확정.

- 1985년 (58세) 포항공과대학교 설립 착수. 고준식 사장 퇴임(사장 안병화 취임). 광양제철유치원,초등학교, 중학교 동시 개료. 광양1기 설비 종합착공. 제철연수원 백암수련관 준공. 미국 USS(유에스스틸)과 합작회사 설립 합의.

- 1990년 (63세) 민정당 대표 취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3당합당으로 민주자유당(민자당) 출범, 최고위원 취임. 포철 부회장 황경노 취임. 광양3기 설비 종합준공(연산조강 810만 톤 체제 확립).

- 1992년 (65세) 한국무역협회 ‘무역인 대상’ 수상. 베트남과 포스비나 합작 설립. 포항제철 4반세기 대역사 준공(연산 조강 2천100만 톤 체제 확립). 포철 회장 황경노.

- 1993년 (66세) 해외 유랑. 도쿄 13평 아파트 생활 시작. 포철 회장 정명식, 사장 조말수 취임. 황경노, 박득표, 이대공, 유상부 등 이른바 ‘TJ파’ 퇴임. 포철 세무조사. 본인, 가족, 친인척, 측근들에 대한 전방위 비자금 조사

- 1996년 (69세) 총선 앞의 여야 영입제의 거부.

- 1997년 (70세) 5월초 귀국, 포항 북구 보궐선거 당선. 김영삼 정권의 경제적 실정 중점 비판, DJT연대, 자민련 총재 취임, IMF관리체제의 국가부도 위기사태 수습 동분서주.

- 2000년 (73세) 자민련 총재 사퇴, 국무총리 취임. 소량의 각혈 시작. 5월19일 총리 사임. 신세기통신 지분 SK에 매각. 포항테크노파크 이사회 창립. 포철 민영화 완료(10월 4일)

- 2001년 (74세) 뉴욕 코넬대학병원에서 폐 밑 물혹 제거수술. 뉴욕에서 9.11테러 현장 목격. 포철 명예회장 재위촉.

- 2003년 (76세) ‘중국발전연구기금회’ 고문으로 초빙되어 베이징 댜오위타이 ‘2003년 중국발전고위충논단’에 참석, 중국경제에 대한 연설.

- 2005년 (78세) 포스코청암재단 확장 설립.


헤럴드생생뉴스/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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