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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기의 마흔, F세대> ③여정: 조변석개 교육제도, IMF한파 ‘취업재수’, 시장선 상투만...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에 접어든 F세대(1966~74년생)의 지난 삶은 억세게 운이 없는 세월이었다. 희망보다는 좌절이 많았던 탓이다. 선배 세대가 시스템을 만들고 먼저 밟고 간 자리에 F세대를 위한 향연은 없었다. 축적된 좌절은 분노로 바뀌어 2012년 대한민국 새틀짜기의 동력으로 바뀔 태세다.

잘 살아보자는 구호와 함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한창이던 그들의 어린 시절은 베이비 붐 세대보다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그러나 극한의 배고픔을 면했을 뿐 풍요로움과는 분명 거리가 있었다.

학창시절은 민주화 열풍과 올림픽이라는 두 역사적 사건의 어울리 법 하지 않은 조합 속에서 흘러갔다. TV에서는 올림픽이라는 세계적 이벤트의 화려함과 새롭게 조직된 노동조합의 투쟁가가 묘하게 교차했다.

대학생이 되는 과정도 힘겹기만 했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학력고사 제도가 ‘선 시험, 후 지원’에서 ‘선 지원, 후 시험’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수학능력시험으로 대체됐다. 재수라도 할라치면 이듬해 성적이 오를까를 걱정하기보다는 대입제도가 바뀌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 컸다.

대학생활은 이른바 ‘386’ 선배들이 휩쓸고 지나간 민주화의 끝자락에서 시작됐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캠퍼스와 거리를 뛰어다니며 새로운 세상을 외쳤지만 소련이 붕괴되고 중국 문호가 열리면서 투쟁 동력은 이내 사라졌다. 민주화 운동의 끝자락이었다.

대학생활을 중단하고 군대를 다녀온 이후 느낀 상실감은 더 컸다. 어느 정도 이름 있는 대학교를 졸업만 하면 추천장을 몇 장씩 받아 기업을 골라 가던 시절은 더 이상 없었다.

토익성적으로 대변되는 영어, 4년 동안의 학점, 자격증, 사회봉사활동 등 이른바 스펙이 없으면 취업은 어려웠다. 대학교 들어와 사람 만나고, 운동권 언저리를 오가며 스펙과는 담을 쌓았던 대부분의 F세대들은 ‘취업 재수’라는 신조어의 첫 희생양이 됐다. 3저호황의 종막 그리고 이어진 IMF구제금융기의 악령이 할퀸 것이다.

이미 취업을 한 80년대 후반 학번은 그래도 사정이 나았다. 취직해서 차도 사고, 학자금도 갚았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경제성장률은 2~4% 안팎으로 떨어졌고 입사 3~4년이 지났을 무렵, 외환위기를 맞았다. 문을 닫는 기업이 속출하면서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결혼이 파탄에 이르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이른바 ‘IMF세대’로도 불리는 90년대 초반 학번의 고통은 더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외환위기를 맞아서였다. 취업을 하고 싶어도 사람을 뽑는 기업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가난한 백수 생활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새로운 밀레니엄이 도래하면서 희망이 엿보이는 듯했다. 경기가 회복되면서 직장을 잡고, 결혼도 했다. 그러나 달콤한 꿈에 부풀어 있을 무렵, 이번에는 집값이 폭등하면서 좌절을 맛본다. 수입은 크게 나아질 기미가 없는데 선배들이 키워놓은 사교육시장에서 내 아이만 도태시킬수도 없었다.

10년 가까이 아끼고 아껴 모은 돈에다 대출을 왕창 받아 가까스로 집을 사니 또 다른 재앙이 시작됐다. 2008년 상반기를 정점으로 집값이 속절없이 떨어져 집을 담보로 빌린 돈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어져 버렸다. 상투를 잡은 것이다. 마치 1999년 벤처붐때 윗세대들이 해먹고 난 뒤 막차 탄 때와 비슷하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니 이전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사교육 열풍이 기다리고 있었고, 오르는 물가에 담보대출 이자까지 겹치면서 저축은 고사하고 생활마저 빠듯해졌다. 대출금 갚기-생활고의 악순환 속에, 역대 모든 시대의 40세 중 상대적 빈곤이 가장 큰 ‘하우스 푸어’가 되고 만다.

이미 기반을 닦은 80년대 초반 학번 선배들의 안정된 모습을 보면서 근사한 화이트 칼라를 꿈꿨지만 F세대의 결과는 빈곤하고 무기력한 화이트 칼라에 불과했다. 선배들이나 후배들 눈에 F세대는 그저 어정쩡하고 명확한 목표와 뚜렷한 신념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시민으로 비칠 뿐이다.

그러나 아무런 생각 없이 사회에 편입된 것만 같았던 잊혀진 그들, F세대가 꿈틀대고 있다. 40여년 좌절에서 벗어나 희망을 갈구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무기로 대한민국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한 몸부림을 서두르고 있다. 올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를 시장으로 이끈 힘도 다름 아닌 F세대에서 나왔다. 이제 F세대는 과거와는 다른 더 큰 변화를 꿈꾸고 있다.

<이충희 기자 @hamlet1007> hamlet@heraldcorp.com


 
F세대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취업난 속에 ‘스펙’ 경쟁이 본격화된다. 때마침 개방화, 세계화 바람이 불면서, 그들은 어학연수 1세대를 기록했다.


IMF 구제금융기의 한파는 사회초년병이거나 취업준비생이던 F세대에게 취업재수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험난한 삶의 여정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첫 단추가 비뚤게 꿰진것이 그들의 탓인가.


 
베이비부머 선배들 보다 5년가량 늦게 집을 샀지만, 부동산 시장이 급랭하면서 집값은 떨어지고 대출금 부담은 커져만 갔다. 이른바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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