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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과 함께한 30년’ 임효,상생을 꿈꾸다
화가 임효는 지난 30년간 끝없는 변신을 거듭해왔다. 우리의 전통 한지를 붙들고 온갖 실험과 변화를 시도했던 것. 그래서 그에겐 ’팔색조같은 작가’라는 평(서성록)이 따라다닌다. 스스로 "30년간 그림 속에서 잘 놀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각고의 과정이기도 했다.

한지와 수묵, 그리고 우리의 전통재료들을 끌어안고 피말리는 실험을 반복했던 작가가 지난 30년을 돌아보는 전시를 꾸몄다. ‘임효의 화업 30년-그림 속에 놀다’라는 타이틀로 오는 3월 6일부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한다.

수묵의 실경에서 출발한 임효는 채색과 판화를 거쳐 표면에 부조를 가한 릴리프작업을 시도했다. 이는 한국화의 오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의 미감에 맞게 변용시키려는 고심에서 비롯됐다. 한국적인 것의 원형을 찾으려는 그는 우리의 정신성은 이어가되 방법에 있어선 파격을 거듭했다.1980년대 역동적인 파묵과 내밀한 운필을 구사했던 임효는 90년대에는 굵은 묵선으로 표현적인 채색화를 선보였다.

임효 민천 40x50cm수제한지 수묵 옻칠 석채염색, 2010.


또 도예를 차용한 도부조판화도 시도했다. 음각으로 된 도판(陶板)에 한지원료를 압착시켜 부조판화를 선보였던 것. 그 위에 채색을 해 입체감을 더했다. 이후 추상적 패턴의 ‘상생’ 연작은 수묵의 번짐과 필선이 두드러졌고, 바탕의 텍스츄어도 강조됐다. 특유의 기법인 ‘우림수묵’과 ‘드림수묵’도 시도했다. ‘우림수묵’이란 닥을 물에 풀어 색감을 들이는 것이며, ‘드림수묵’이란 옻칠을 가해 색의 변질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임효의 그림에선 모필의 자취가 사라졌다. 대신 짚풀같은 두터운 표면이 생성됐다. 이 역시 한지다. 일일이 수제한지를 만들어 작업할 정도로 임효의 한지 사랑은 각별하다. 그는 한지를 단순한 재료가 아닌, 주인공으로 대접한다. "한지에서 출발해 한지로 끝난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근래들어 임효의 작품은 진폭이 커졌고, 단단해졌다. 채움과 비움을 반복한 결과다. 임효는 원료인 닥을 물에 풀고, 그것을 화판에 펼쳐 꾸들꾸들해지면 크고 작은 도침으로 표정을 낸 뒤 종이를 올려 성형을 한다. 그리곤 다시 닥을 올려 접합한다. 접합과 이음의 반복이다. 그는 요즘 옻칠작업에도 빠져 있다. 나전칠기에서 쓰이는 옻칠을 그림에 기용했다. 옻칠은 그 광택이 깊고 그윽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맑아지는 특성이 있다. 임효는 석채 위에 옻칠을 올려 발색에 깊이감을 더했다.

그는 이번에 순정한 인간 존재에 대해 천착했다. 진리와 우주의 생성, 그 속 인간의 삶에 대해서도 매달렸다. ‘하늘’ ‘진리의 힘’ ‘지혜의 빛’ ‘깊은 지혜’ ‘영감’ ‘인연’ 등의 제목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림에 유난히 꽃이 만발해 있다. 붉고 탐스런 꽃이다. 그에게 꽃은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불빛같은 존재’를 뜻한다. “세상의 모든 어둠을 밝혀주는 꽃이 있다. 이 꽃은 내면에서 타오르는 붉은 꽃, 곧 지혜의 꽃이다. 이 꽃이 피어오르면 세상은 자비의 홀씨들이 온누리를 수놓을 것이다. ‘자비의 홀씨들’이 온누리를 덮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본다"고 작가는 말했다.



또 ‘하늘’ 연작과 대해 작가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에너지가 교감하며 순행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했다. 자비로 충천한 세상의 비전을 형용한 것인데 이는 종전의 자아, 내면 수양에 한정됐던 것에서 나아가 조화로운 세상, 곧 상생(相生)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위해 화폭에 자개조각을 붙여 빛이 날아다니는 듯한 효과도 냈다. 미술평론가 서성록 씨는 "상생은 임효 작품의 주제가 될 뿐 아니라, 작업과정의 잘 눈에 띄지 않는 미세한 부분까지에도 철저히 반영되어 있다"고 평했다.

이번 30년 화업 결산전에 앞서 작가는 독일 함부르크 외곽에 석달간 머물며 작업했다. 낯선 북부 독일에서 추위와 고독과 싸우며 홀로 지낸 이 시기에 그의 작업엔 큰 변화가 찾아왔다.
“모든 것을 걷어내고 내면으로 들어가니 비로소 본체가 보였다. 그런 마음으로 작업하니 하늘을 많이 그리게 됐다”고 토로했다.독일에서 시작된 내면에의 성찰은 자연스럽게 ‘하늘’ ‘연기(緣起)’시리즈로 탄생했다. 화폭에선 형상이 사라지며 자연스럽게 추상작업이 나왔다. 옻칠작업도 시작했다. 옻칠을 올리면서 배경이 어두워졌지만, ‘우주의 색’이 나온 것같아 만족스럽다고 했다. 

임효 민천(民天) 40x50cm수제한지 수묵 옻칠 석채염색, 2010


이번 전시에는 2010년 이후 제작한 신작 60여점이 나온다. 주제는 ‘자연과 생명’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가 ’청년 작가’를 졸업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쉼 없이 다양한 실험과 모색했다면 이제는 ‘청년작가’를 마감하고, 예술가로서 보다 성숙된 작업을 하고 싶다”는 것. 전시에 맞춰 30여년간 제작한 수천여 점의 그림 중 700점을 추려 화집으로 묶어냈다. 또 글과 그림이 곁들여진 에세이집 ‘그림 속에 놀다’(나무생각)도 펴냈다. 전시는 3월13일까지. 070-7404-8276

<이영란 선임기자>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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