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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의 영역’에 대한 인간의 도전
인간의 꿈을 실현하는 데에 현실은 너무나 더디다. 생명과 과학이 만나 ‘인간의 존엄성’이나 ‘신의 영역’이라는 윤리적 문제와 뒤섞이는 ‘유전자 복제’라는 벽 앞에 서면 그것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처럼 서있다. 그러나 ‘은막’에서는 다르다.

현실에서의 유전자 복제가 윤리적 논란 속에서 시간을 쌓아갈 동안 영화는 이보다 늘 한 발 앞서 실현했다. 그 안에는 인간과 동물의 융합(‘닥터 모로의 DNA’)도 있었고, 복제인간끼리의 싸움(‘저지 드레드’)도 있었으며, 폐쇄된 공간 안에서 만난 복제인간들의 자기애(‘더 문’)를 다루기도 했다. 자기 삶을 지키기 위한 복제인간들의 처절한 질주(‘아일랜드’)도 있었고, 아주 노골적인 ’복제인간’이라는 제목의 영화도 있었다. 아픈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진 복제인간에 대한 것과 인간의 윤리적 문제를 논하며 파멸을 몰고 오는 경우는 대다수였다.

현실에서와는 달리 긴 시간 다양하게 펼쳐진 꿈의 세계였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대변해준 세계였다. 때문에 이 땅의 유전자 복제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에는 수많은 저서와 뉴스, 학술 자료가 필요함에도 그 영역은 꿈에 비해 좁다랗고 거칠어 보인다.

최초의 포유동물 복제 사례였던 돌리(1996)로 시작한 유전자 복제는 복제송아지 영롱이(1999), 동물 복제의 난공불락이라 여겨지던 복제개 스너피(2005)를 거치며 발전을 거듭한다. 이 생명공학을 통해 인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제쳤다.

그 사이에는 인류 최초의 복제 원숭이 ‘테트라’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0년 1월 14일이었다. 이날은 현실에서 ‘영장류’ 복제의 ‘최초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으로 기록됐다. 일란성 쌍둥이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배아 분할을 이용해 어미 동물에 이식하니 ‘테트라’가 태어나게 됐다. 암컷 원숭이였다. 이 원숭이의 이름이 테트라인 것은 연구자들의 실험에서 4개의 배아 중 3개는 살아남지 못하고 네번째 배아는 157일만에 원숭이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4분의 1’의 확률, 귀한 이름이었다.

겨우 11년이었다. 현실에서의 영장류 복제의 역사가 걸음마를 시작할 동안 은막의 세계가 보여준 최초의 유전자 복제는 무려 7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전자 복제의 대중적 관심을 촉발한 것은 1993년쯤으로 회고할 수 있다. 호박 속에서 1억 3000만년 전의 공룡피를 빨아먹은 모기를 통해 복원한 공룡들의 ’섬뜩한 악몽’을 담은 ‘주라기 공원’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 은막이 보여주는 ‘꿈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그것은 기괴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며, 인간의 존재에 대한 회의로 되돌아오기도 했다.

1933년작 ‘닥터 모로의 DNA(감독 얼 C.켄튼, 1933)’는 기괴했다. 인간과 동물을 결합시켜 외딴 섬으로 격리했다. 모로 박사는 영화 속 인간으로서 가능한 유전자 접합 실험의 모든 것을 선보인다. 그 결과 태어난 것은 사람도 짐승도 아닌 비스트 맨(Beast Man)이었다. 야심에 찬 박사는 새로운 생명체로 인류를 재창조하려는 야욕을 품었으나 영화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인간에게 ‘파멸’을 벌한다. 이 영화는 이후 1977년, 1996년 두 번의 리메이크 과정을 거치며 유전자 복제 영화의 신호탄을 알린다. 

‘가타카(감독 앤드류 니콜, 1997)’는 유전자 조합으로 태어난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소룡의 노란 트레이닝복(‘킬 빌’)을 입었던 우마 서먼은 이보다 앞서 유리처럼 투명한 피부와 푸른 눈의 신비를 테크놀로지의 세계에 담았다. 이 영화는 일종의 거래였다. 우성 유전자의 조합으로 태어난 인간, 열성 유전자의 조합이 만들어낸 인간, 이를 통해 유전자를 거래하는 또다른 차원의 윤리성을 보여줬다.

‘가타카’를 넘어 ‘아일랜드(감독 마이클 베이, 2005)’에 와서는 유전자 조합과 인간 복제의 윤리적 문제라는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어쨌거나 인간의 불로장생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들이 자아를 인식하는 것은 흡사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대표되는 ‘A.I.’류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다. 여기에서 ‘인간성’에 대한 명제가 제시된다. 철저하게 통제된 희망의 땅에서 살아가는 선택받은 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들의 세상은 인간들은 모르는 유토피아, 하지만 이 곳은 복제인간이면서도 자신들이 복제인간인 줄을 모르는 이들의 세계다. ‘아일랜드’의 복제인간들은 자기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순간 살아남기 위한 질주를 시작한다. 

그에 앞서 ‘6번째 날(감독 로저 스포티스우스, 2000)’도 있었다. 영화는 인간의 입장에서 참으로 기막힌 설정이다. 인간은 자신들의 영생을 위해 복제인간을 만든다. ‘신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는 이렇게 말한다. 신의 영역을 넘어선 인간을 향한 클론의 공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신의 영역’을 침범하고자 하는 인간의 오만함은 ‘스플라이스(감독 빈센조 나탈리, 2010)’ 안에서 구체화된다. 생명공학의 발전 속도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는 답답할 정도로 늦었다. 윤리적인 제약이 늘 따라다닌 탓이다. 이제 유전자들은 다양하게 결합됐다. 파충류, 조류, 양서류, 갑각류가 인간의 DNA와 만나 새로운 새명체를 만들어냈다. 기괴하기로는 ‘닥터 모로의 DNA’ 못지 않았다.

기꺼이 ‘판도라의 상자’를 연 인간의 생명공학은 은막 안에서 구체화됐다. 유전자를 조작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이 ’생명의 마법’은 영화 안에서 윤리를 넘고 상상을 키워갔다. 더이상 재미는 중요치 않았다. ’꿈’으로 키워진 이야깃거리가 안고 가야할 윤리 영역의 담은 높았다. 신의 영역을 넘어선 영생에 대한 갈망은 인간성 상실의 또 다른 모습을 그렸으며 이는 시종일관 어두운 색으로 칠해졌다. 이 세계는 결코 타협이 그려질 수 없었다. 유전자 복제라는 하나의 문제를 두고 시도하는 쪽과 시도된 쪽은 서로 대립하거나 주종관계처럼 그려졌다. 이제 겨우 11년의 시간을 쌓은 영장류 유전자 복제는 이미 오래전 영화 안에서 ’인간의 양면성’으로 치환됐다. 그럼에도 꿈이 그려내는 유전자 복제의 세계는 끝을 모르고 달려간다. 72년전 시도된 유전자 접합의 기괴한 그림은 72년이 흐른 지금 이른 새벽의 푸른 하늘이 그려내는 서정성으로 돌아온다. 어느새 이성에 감성이 숨어들었다. 곧 개봉을 앞둔 키이라 나이틀리의 ’네버 렛 미 고’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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