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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영훈의 이슈프리즘> 클렘린 유권자의 ‘숨은 표’는 얼마?
총선을 보름 앞둔 정치권이 불안하고 답답해 하는 것은 ‘숨은 표’이다. 10%포인트 앞섰으니 안심이라는 생각에 ‘대세론’으로 몰고 가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지방선거때 한나라당은 ▶천안함 “북한 소행, ‘1번’ 어뢰 공격” 발표, ▶이명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50% 돌파 ▶경제지표 호전, 여론조사의 압승 등등 호재나 겹치자, 야당을 향해 거침없는 공세를 전개하다, 결국 대패하고 말았다. 결과론적인 얘기이지만 실체로 모르고 ‘오버’했던 것이다.

‘숨은 표’를 염두에 두지 않는, 몇몇 후보의 전략 없는 각개전투가 중앙당으로선 걱정이다. 특히 여당이 그렇다. 여론조사에서는 앞서다 개표해 보면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남과 수도권 일부에서 집권당 못지않게 위세를 떨지는 전통적인 민주당 우세 선거구의 야권후보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열흘쯤 앞둔 시점에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 측은 “숨은 표가 3%면 이기고 7%면 진다”는 자체 분석을 내놓았다. ‘숨은 표’란 여론조사 때 자기 의중을 침묵의 나선 속에 숨기다가 기표장 천막을 내리고서야 자기 마음을 실행하는 ‘클렘린 유권자’를 말한다.

‘숨은 표’는 전반적으로 야권 지지표가 많고, 지역에 따라서 기존 권력이 우세할 경우 그 반대표가 많다. 비밀한 곳에서야 나만의 뜻을 분명히 하고, 공개된 사회관계에서 자기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은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에 의해 나타난다. 많이 거론되는 얘기와 반대되는 의견을 갖고 있을 때 침묵하다 은밀한 기표장에 가서야 내 뜻대로 찍는 행태다.

‘숨은표’가 어느정도인지 몰라, 겸손, 소극, 위축으로만 일관한다고 선거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다. 과감한 도전, 거침없는 공격 등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숨은 표’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진정성’이다.



■나경원은 10% 뒤집혀

나 후보는 그런 분석을 내놓을 당시 여론조사에서 박원순 후보를 2.9%포인트(뉴시스), 3.1%포인트(서울신문), 3.6%포인트(중앙일보), 5.5%포인트(한겨레신문) 정도 앞서고 있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기간인 선거 사흘 전 ‘안철수의 박 캠프 방문’이라는 돌출변수가 발생하면서 이 격차는 줄어들고, 결국 박 후보가 53.4%의 득표율로 나 후보(46.2%)를 7.2%포인트로 눌렀다.

결국 돌출변수와 함께 작용한 ‘숨은 표’는 10~11%포인트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숨은 표’로 볼 수도 있지만, ‘굳힌 표’, ‘변한 표’도 적지 않다는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일부 소극적 지지층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정당과 인물, 민생 등에 대해 보다 정밀하게 파악하면서 변심하기도 하고, 오락가락하다 한쪽을 굳히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이다.

숨은 표, 변한 표, 굳힌 표를 정확히 구분하기 어려우므로 여기서는 숨은 표로 통칭하기로 하자.

이혜훈 새누리당 상황실장은 지난 25일 “판세 보고를 보니 나름 괜찮은 편이다. (여당인 점을 고려해)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5%포인트 정도를 빼고 봐도 걱정했던 것보다 그럭저럭 괜찮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그러나 “물론 10%를 빼면 얘기는 달라진다. 여론조사는 워낙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표표표......숨은 표, 변한 표, 생각대로 굳힌 표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돌입직전 상황과 실제득표율을 비교해 보면 ‘숨은 표(변한 표, 굳힌 표 포함)’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숨은 표의 크기는 이 실장이 말한 5%보다는 더 빼야 할 듯싶다. 최소한 10% 정도는 된다는 것이 전례를 통해 말해주고 있다. 휴대폰 조사가 쉽게 이뤄진다면 모를까, 여전히 2040남성, 20대여성이 거의 전화를 받지 않는 가정집을 대상으로 하므로 ‘민심’을 대변하기 어렵다는 점도 ‘숨은 표’를 키우는 요인이다.

최근 2년의 전례를 보자. 지난해 4ㆍ27 재보선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숨은 표는 9.1~21.5%이다.

선거 일주일 전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 엄기영 후보는 최문순후보를 17%포인트 앞섰다. 선거 열흘 전 KBS-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는 엄 후보가 9.1%포인트를, 선거 11일 전 리서치뷰 등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엄 후보가 4.6%포인트를 앞섰다. 하지만 개표 결과 최 후보는 엄 후보를 4.5%포인트 차로 누르고 역전 당선됐다.

2010년 6ㆍ2 지방선거, 서울시장 투표 결과도 10.9~18.0%의 오차가 발생했다. 선거 일주일 전에 집계된 뉴시스와 한길리서치의 조사 결과, 오세훈 후보는 한명숙 후보를 18.6%포인트 차로 앞섰고, 선거 보름 전 실시된 CBS와 리얼미터의 조사에서는 오 후보가 11.5%포인트를 앞서나갔다. 하지만 실제 개표는 0.6%포인트 차이로 오 후보가 겨우 당선됐다.



■이광재-최문순 20% 역전

당시 강원도지사 자리를 놓고 벌였던 이광재 민주당 후보와 이계진 한나라당 간의 여론조사-실제득표율 오차는 야권 군소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을 모두 이광재 후보 쪽으로 합산하더라도 17.4~18.7%의 오차가 발생했다. 강원도 내 5개 언론사의 4월 중순 조사 때의 격차는 14.6%포인트 이계진 우세, 5월 9일 조사에선 16.2%포인트로 더 벌어졌다. 선거 일주일 전 리서치뷰의 조사에서는 8.7%포인트로 좁혀졌다. 결국 이광재 후보가 8.7%포인트 차로 역전승했다.

지난해 분당을 국회의원 재보선에선 여론조사가 널뛰기를 했다. 결과적으로는 여론조사와 실제표심의 격차는 5%포인트였다. 선거 열흘 전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선 손학규 후보가 강재섭 후보를 7.5%포인트 앞섰지만, 투표 일주일 전 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는 강 후보가 2.3%포인트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 당일 YTN 출구조사는 손 후보의 9.7%포인트 차 승리였지만, 결국 손 후보는 2.7%포인트 차로 신승했다.

지난해 8월 24 무상급식투표 의향에 대한 조사에서는 최저 8.9%포인트, 최고 14.6%포인트의 격차가 났다. 실제 투표율은 25.7%인데, 적극투표의사를 밝힌 응답은 7월 23일 조선일보 조사 34.6%, 8월 14일 동아일보 37%, 8월 15일 매일경제 40.3%, 8월 20일 중앙일보-YTN-동아시아연구원 38.3%였다.



■일주일 전에도 변한다. 추세에 유의하라.

‘숨은 표’는 강원도에서 부쩍 많았다. 변화의 필요성을 스스로 강하게 느끼면서도, 정서적으로 혼자 다른 의견 내기를 꺼리다 투표장에 가서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통적인 보수지역, 친여지역이었던 점 때문에 “개혁”을 대놓고 얘기하지 못한 채 투표로 말했던 것이다.

이처럼 ‘진의 숨기기’가 놀라운 선거 결과를 초래하는 데 크게 작용하겠지만, ‘여론 공표 금지 일주일간의 변화’도 만만찮게 작용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원 정한울 EAI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지방선거 리뷰’를 통해 ‘친MB성향이면서 MB심판론자’, ‘反야성향이면서도 MB심판론자’ 등 양면적 태도를 갖고 있던 유권자 중 일부가 일정한 변수에 따라 태도를 바꾼다”면서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자신감에 찬 여권의 선거전략이 급격하게 공세적으로 전환되면서 이들 유권자들에게 견제 균형심리가 발동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전통적 우세지역이나, 집권당 후보가 ‘숨은 표’를 고려하지 않고 선거운동을 했다가는 낭패를 볼 가능성도 있다.



■숨은표가 주는 교훈

10%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이는 ‘숨은 표’는 총선을 보름 앞둔 현재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잘났다”고 주장할수록 손해 볼 가능성이 높다. 우리 국민은 노무현의 예상 밖 돌풍, 그러나 절반에 그친 개혁, 탄핵정국 ‘탄돌이’의 국회 과반수 점령, 이명박의 경제 능력 과신과 실망, 18대 총선 한나라당 절대의석 몰아주기 이후 펼쳐진 파행국회를 거치면서 권력의 편중, 균형감의 상실, 감성에 의한 투표가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객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어디 저 컴컴한데 그런 데서…” 라든지, “해적 기지…” 등 오만함이 묻어나거나, 민심을 충분히 살피지 않은 언행은 치명적일 수도 있다. 오만과 건방은 반드시 역풍을 부른다. 국민의 견제심리가 어느 때보다 강해졌기 때문이다.

또 10%포인트쯤의 차이는 얼마든지 변한다는 것이다. 나경원 후보의 10%포인트 역전패를 초래한 유권자 중에는 이미 정한 본심을 숨기다 박원순 후보를 슬쩍 찍은 사람, 이리저리 부동(浮動)하다 ‘안철수의 박 캠프 방문’을 계기로 마음을 굳히거나 변심한 시민이 섞여 있을 것이다. 일주일 전 흐름에서 전반적으로 경쟁정당의 상승세, 또는 자기 지지도의 하락세가 느껴진다면 기존에 10%포인트 앞선 것은 무용지물이 된다. 박빙의 자세로 전략을 구사해야지, 서둘러 ‘관리’ 모드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돌출 변수를 주의해야 한다. 안철수가 선거에 개입한다면 이는 불가항력이겠지만, 후보자의 선거참모에 의해 벌어지는 악재를 잘 관리해야 한다. 특히 불법행위가 적발되면 치명적이다. 재선거를 치르는 모습을 한두 번 본 시민들이 아니므로 재선거할 불법이라면 아예 찍어주지 않는다. 금품선거 의혹이 불거진 일부 선거구에서는 돈을 요구한 유권자가 상대 정당의 ‘세작’이라는 설도 나돌고 있다. 심지어 꼼짝 못하게 배달관리(delivery control)를 통해 전달현장에서 적발되도록 돈봉투 전달자와의 약속 직전 선관위에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선거막판 ‘세작’통해 불법 유도, 주의!

여론조사 결과가 비교적 정확하다고 가정했을 때, 숨은 표는 반드시 야당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2010년 6ㆍ2 지방선거 때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50%를 넘고, 천안함 사건으로 안보정국이 형성되었으며, 각종 경제지표가 리먼브러더스 위기의 완연한 극복 조짐을 보였음에도 여권이 참패한 것은 오만함, 독선적 이미지 등 때문이었다.

지금 여권으로선 “잘못했다”고 시인할 것은 하는 게 표의 이동을 막는 길일 수가 있다. 야당은 뭘 어떻게 잘할지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으면서 남의 욕만 해대면 ‘데려올 표’가 적을 가능성이 높다.

인종차별, 지역차별 등 요인 때문에 인기조사에서는 앞서다가도 기표장 변심 때문에 예상외의 결과가 나타나는 편견, 즉 ‘브래들리 효과’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 한국 PK민주당 복수 당선 등 계기로 크게 둔화된 것 같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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