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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채석장·한밤 야산 '실종현장' 달려간 '그 견공'…12명 생명 살린 어느 구조견의 추억
2013년생 119 특수구조견 ‘비호’, 2015~2022년 활동후 지난달 은퇴
7년간 159회 출동…현역땐 한달 20번 이상 출동
생존자 12명·사망자 28명 발견 '맹활약'…지금은 반려견 생활 한달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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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양주시 채석장 붕괴 사고 실종자 3명 발견’, ‘실종된 80대 치매노인 산속에서 발견’…. 이 일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119 특수구조단 소속 구조견입니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산악, 붕괴 사고 현장에서 맹활약합니다. 전국 35마리의 소방청 구조견들이 ‘핸들러’로 불리는 대원과 호흡을 맞춰 곳곳을 누비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에게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지난해 12월 은퇴한 서울특별시 119특수구조단 소속 구조견 ‘비호’도 마찬가지입니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7년 동안 수십명의 사람을 구했지만 아는 사람만 압니다. 구조견으로서 비호의 삶은 어땠을까요? 4년간 비호를 전담한 119특수구조단의 핸들러 이동수 소방장을 만나 비호의 ‘일생’에 대해 들었습니다. 인터뷰 기사는 비호의 관점으로 작성됐습니다.
지난해 12월 은퇴한 119 특수구조견 ‘비호’가 핸들러 이동수 팀장의 지시에 따라 장애물을 넘고 있다. [소방청 제공]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뱃살은 늘어 출렁거린다. 몇 분간 뛰기라도 하면 숨이 차오르기 일쑤다. 한 달 새 5㎏이 쪘다고 한다. 간식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이다. 산책이라도 하게 되면 한 번도 어울려본 적 없는 치와와 같은 작은 개가 말을 건다. 엄격히 지켜지던 수면시간, 훈련 후 풍기던 땀 냄새, 내가 구한 사람들의 격렬한 포옹…. 이제 모두 과거지사다.

[영상=윤병찬PD]

나의 이름은 ‘비호(飛虎)’다. 7년간의 구조견활동을 끝낸 뒤 지난해 12월 은퇴한 개다. 경기도 모처의 한 일반가정에 입양돼 제2의 견생을 살고 있다. 일반주택에 입양된 지 한 달, 이제 주인에게 재롱을 부리는 게 하루 일과다. 나는 영락 없는 반려견이 됐다.

물론 과거의 본능이 되살아날 때도 있다. 건너편 뒷산에서 사람 냄새가 끼쳐올 때다. 온몸에 긴장감이 돌고 털이 곤두선다. 누굴까? 길 잃은 노인? 머리 속이 복잡한 취업준비생? 그냥 등산객이어야 할 텐데….

119 특수구조견 ‘비호’가 은퇴 전 훈련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119특수구조대 제공]

2013년 4월 1일생인 나는 올해 열 살이 된다. 벨기에가 원산인 마리노이즈 견종이다. 이 견종의 평균 수명이 9~13년이라고 하니, 나는 노견이다.

견생 대부분을 구조견으로 살았다. 2015년 12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장장 7년 동안 159번 소방서 밖으로 출동했다. 그렇게 살린 사람이 12명이다.

주요 임무는 살아 있는 실종자 수색이었다. 산에서 실종되는 사람이 많은 여름에는 한 달에 20일 넘게 출동하기도 했다. 산길에 팬 발자국에 남은 발 냄새, 나뭇가지에 묻은 체취를 따라가면 그 끝에는 사람이 있었다. 소방관이 산 사람을 구조하듯 소방구조견인 나 역시도 살아 있는 사람을 찾는 게 먼저였다. 이미 사망한 사람의 수색은 소방관보다는 경찰과 경찰견이 한다. 물론 살아 있는 사람을 찾으러 나섰다가 찾은 망자도 28명이나 된다.

3일 서울 은평구 서울시 소방행정타운에서 서울특별시 119 구조견 구구가 이동하기 위해 핸들러의 신호에 맞춰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나의 출동에는 항상 119구조대의 이동수 소방장이 동행했다. 입소부터 퇴소 때까지 나를 돌봐준 옛 주인이다. “허이! 허이!” 하는 옛 주인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나는 ‘허이’라는 소리가 들리면 목표물을 향해 달려가라고 훈련받았다.

이 소방장은 누구를 만나도 내 얘기를 했다. 어딜 가도, 어떤 구조견을 만나도 ‘우리 비호’로 시작하는 수다를 떨었다. “나는 우리 비호 덕분에 받을 수 있는 상은 다 받아봤어.” 허허 웃으며 나를 쓰다듬던 주인이다.

이 소방장은 내 ‘시그널’을 놓치지 않았다. 사람 냄새가 강하게 나면 나는 주둥이를 쳐든다. 꼬리를 하늘로 세우고 휘휘 돌린다. 왈왈 짖는다. 근방 50m 안에 뭔가가 있다는 얘기다. 그때부터는 인간들의 몫이다.

첫 출동을 기억한다. 2019년 겨울 청계산이다. 이 소방장의 “허이”라는 외침이 들렸다. 나는 골짜기에서 산등성이로 달리기 시작했다. “119 구조견입니다! 구조견이 다가가도 놀라지 마십시오!” 이 소방장이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외투와 신발이 발견됐지만 실종자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뛰기를 한참, 낭떠러지 아래에서 강한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속도를 줄여갔다. 그리고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확신했다. 분명 근처에 사람이 있다고.

“왈왈.” 주인을 향해 소리쳤다. 그는 다급해진 모습이다. 다른 구조대원들도 분주해졌다. 함께 따라온 인명수색용 드론도 날기 시작했다. 구조대가 줄을 매고 낭떠러지 아래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 잠든 채로 누워 있는 사람이 있었다. 주인과 이뤄낸 첫 성과였다.

가끔은 건물 붕괴 현장에도 투입됐다. “허이!”라는 소리가 수차례 들렸지만 내 몸은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대소변을 흘리고 콘크리트더미 앞에서 주저앉을 만큼 긴장할 때도 많았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놀란 탓이다. 그럴 때면 옛 주인은 나를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 꽉 껴안았다. 무너진 건물의 먼지 냄새에 익숙해질 때까지 언제까지고 기다려줬다.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으면 내 몸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3일 서울 은평구 서울시소방행정타운에서 서울특별시 119구조견 ‘비호’의 핸들러였던 이동수 소방관이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이런 일, 아무 개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처럼 소방서에서 일하는 개는 전국에 겨우 35마리뿐이다. 나를 포함한 구조견들은 모두 엄격한 과정을 거쳐 선발된다. 내가 세상에서 처음 만난 주인(1~2살까지 나를 키운 주인)도 나를 구조견훈련소에 입소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2015년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입소한 나는 2년간의 훈련 후 서울시 119특수구조단 소속 정식 구조견이 됐다. 구조견 1마리를 키우는 데에 2억원이 든다고 하니, 나는 꽤 비싼 몸이다. 물론 돈의 대부분은 나를 훈련시키고 돌봐주는 사람들의 인건비다.

구조견으로서의 나의 삶은 ‘절제’ 그 자체였다. 일단 날 닮은 강아지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됐다. 한 살쯤 중성화수술을 했다. 수컷 특유의 충동을 자제하기 위해서란다. 구조견이 된 후에는 하루에 1~2번 퍽퍽한 사료를 먹었다. 주인 옆에 딱 붙어 잔디밭을 누비고, 장애물을 무사히 건너면 보상으로 간식이 떨어졌다. 하지만 본격적인 구조견 이후로는 간식을 거의 구경하지 못했다. 살이 찌면 뒷다리에 무리가 간다. 뚱뚱한 구조견은 세상에 없다고 했다.

3일 서울 은평구 서울시소방행정타운에서 서울특별시 119구조견 ‘태주’가 훈련받고 있다. 임세준 기자

내가 은퇴한 뒤에는 새로운 구조견 ‘태주’가 내 자리를 이어받았다. 2019년부터 소방행정타운에서 나와 함께 훈련했던 개다. 지난해 11월 태주가 ‘한 건’을 했다고 한다. 15시간 수색 끝에 길 잃은 80대 할아버지를 북한산 한가운데서 찾아낸 것이다. 할아버지 머리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다고 한다. 한겨울에 반소매 셔츠 차림으로…. 할아버지는 “담배 한 대 피웁시다” 하며 여유로웠다는데 아들이 보자마자 펑펑 울었다고 했다.

옛 주인과 태주 생각에 젖어드는 순간, “비호야!”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초등학생인 작은 주인의 목소리다. 나도 모르게 겅중겅중 뛰어갔다. 장애물을 넘지 않아도 간식을 주는 착한 사람이다. 그래, 구조견생활은 추억일 뿐이다. 나는 이제 어엿한 반려견이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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