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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 11월까지 선정”…3개월 평가 과정 거친다지만 사실상 전투기 선정 불가능…갈수록 꼬이는 F-X사업
F-15SE·F-35A·유로파이터 타이푼 3기종 중 60대 구입…
창군이래 최대 규모 무기사업

방사청·공군 고위직 등 잇단 교체·퇴임…
차세대 전투기 선정 밀어붙이기 위한 의혹의 눈초리


지난달 18일 차세대 전투기 선정 사업(F-X 사업) 제안서 접수를 마감한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이 다음날인 19일 재입찰 공고를 내 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재공고 이유는 제안서를 낸 3개 업체 중 2곳의 제안서가 기준에 미달했다는 것. 제안서를 낸 보잉, 록히드마틴,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 등 3개 업체 중 록히드마틴과 EADS가 제안서 한글본을 제때 제출하지 못했다.

방사청은 지난 5일 제안서 재접수를 다시 마감했다. 역시 같은 3개 업체가 제안서를 냈다. 이번에는 모두 기준을 충족했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방사청의 재입찰 결정은 서류가 미비한 업체들에 입찰 기회를 추가로 제공한 효과를 냈다.

사업 초기 방사청의 이 같은 행보는 앞으로 전개될 차세대 전투기 선정 과정의 문제점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정부가 비싼 돈을 들여 물건을 사는 입장이지만 촉박한 시한에 쫓겨 오히려 판매자에게 끌려가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앞으로 약 3개월간의 평가 과정을 거쳐 오는 11월 중 차세대 전투기 기종 선정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정부의 신속한 F-X 사업 추진 방침은 사실 불과 얼마 전 결정된 것이다. 정부의 F-X 사업은 약 8조3000억원을 들여 차세대 전투기 60대를 도입하는 사업이다. 창군 이래 최대 규모의 무기 도입 사업으로 불린다. 세계 유수의 전투기 제조회사들이 저마다 한국의 F-X 사업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입찰에 참여한 한 업체 관계자는 “한국 F-X 사업에 사운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의욕을 불태울 정도다.

그러나 정작 정부는 정권 초기에 지금과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는 전임 정부가 세운 차세대 전투기 도입 관련 계획을 전면 보류했었다. 전임 정부에서 2010년 차세대 전투기 예산으로 잡혀 있던 157억원은 전면 삭감됐다. 그러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을 겪으며 지난해 정부는 돌연 향후 2016년까지 새로운 전투기 기종을 도입하겠다는 F-X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6월 18일까지 제안서를 받고 10월에 기종 선정을 끝내기로 돼 있다. 제안서를 받고 최종 기종을 선정하는 데까지 불과 3개월의 여유를 둔 것이다. 입찰 일정이 보름여 지체돼 최종 기종 선정을 11월로 연기하긴 했지만 여전히 시간이 촉박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종건 연세대 정외과 교수는 이달 월간 ‘디펜스플러스21’에 기고한 글에서 “전투기 3사의 제안서를 3개월이라는 시간에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우리 공군 입장에서는 이 같은 차세대 전투기 사업 과정이 한층 더 당혹스럽다. 우리 전투기 중 노후 기종이 많아 차세대 전투기 도입이 시급한 게 현실이나 그렇다고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전투기를 선정한다는 것도 환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군 내부에서는 “과연 올해 안에 (전투기 기종 선정이) 되겠느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새어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실제로 오는 11월 중 전투기 기종 선정이 완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 정부는 F-X 사업의 차기 정부 이양 논란에 대해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방사청 관계자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F-X 사업을 차기 정부로 연기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며 관련 의혹 진화에 적극적이다.

그런데 이런 정부의 단호한 입장은 말에만 그치지 않는다. 방사청은 최근 전투기 선정 관련 보직자를 대거 교체하고 있다. 지난 5월 초 F-X 사업을 총괄해온 방사청 항공기사업부장이 전격 교체됐고, 이어 방사청 차장이 교체됐다. 항공기사업부장의 교체 이유는 형이 F-X 사업 관련 사업체에 근무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임 방사청 차장에 박청원 전 지식경제부 대변인을 임명한 배경에는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설이 파다하다.

이와 함께 최근 공군 3성급 이상 장성들이 대규모 보직 이동을 하고 있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F-X 사업의 무리한 추진을 위해 방사청이나 공군 고위직을 잇달아 교체하거나 퇴임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던 한 정부 고위 인사는 “어떤 일을 추진하기 전에 입맛에 맞게 보직을 교체하거나 퇴임시켜 새로운 진용을 짜는 것은 MB 인사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계획대로라면 정부는 올해가 가기 전에 보잉의 ‘F-15SE(Silent Eagle)’, 록히드마틴의 ‘F-35A’, EADS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등 3개 기종 중 하나를 선정하게 된다.

F-X 사업은 현재까지 총 3차에 걸쳐 진행됐다. 1차 사업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지 27개월 만인 2002년 기종 선정이 완료됐다. 2차 사업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5~2007년 사이에 13개월이 걸렸다.

1차 사업에서는 미국 보잉의 ‘F-15’, 프랑스 다소의 ‘라팔’, EADS의 ‘유로파이터’, 러시아의 ‘수호이’ 등 4개 기종이 경합을 벌여 F-15가 선정됐다. F-X를 통해 도입하려던 전투기 120대 중 1차 사업에서 40대가 도입됐고, 2차 사업에서는 1차 사업의 나머지 물량인 20대가 올해 4월까지 도입이 완료됐다. 그리고 이번 3차 사업에서 새로운 업체를 선정, 120대의 절반인 60대를 들여올 예정이다.

김수한 기자/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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