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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매했던 아시아나 운명, 또 기로에…결국 이익쟁탈전 [홍길용의 화식열전]
30일 화물부문 매각여부 결정 이사회
대한항공 인수 위한 알짜 포기 첫단추
EU 승인 얻어도 美·日 추가요구 할수
시장지배력 약화되면 결합효과도 줄어
결합되면 한진칼 최대주주만 최대 수혜
산은 투자회수 위해선 국민부담 높여야

2020년 12월 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산업은행을 상대로 한 한진칼의 신주발행을 허용한다. 경영권 분쟁 중에는 기존주주의 권한을 침해하는 신주발행을 금지한다는 대법원 판결(2009.1.30. 선고 2008다50776)과는 다른 판단이다. 아시아나항공 경영정상화를 위해 대한항공과 기업결합이 불가피하고 이를 위해 한진칼의 긴급한 신주발행이 필요하다는 산은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결과다.

오는 30일 아시아나항공이 화물부문 매각 여부를 결정하는 이사회를 개최한다. 대한항공과 기업결합에 필요한 유럽연합(EU) 독점규제당국의 승인을 얻기 위해서다. 3년만에 다시 중요한 기로다. 2020년 아시아나항공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주범은 코로나19였다. 2021년부터 화물부문이 여객부분의 부진을 만회하며 회사를 구해낸다. 화물부분은 여전히 알짜 사업부문이지만 기업결합 승인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토사구팽(兎死狗烹)’ 될 처지가 됐다. 과연 어떤 결정이 바람직할까?

▶규모의 경제를 위해…미국·유럽항공사 대형화 바람

*2023년 상반기 기준(자료:FT)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조합의 명분은 규모의 경제다. 원론적으로 합치면 비용이 절감되고 시장지배력을 높여 수익성을 개선시킬 수 있다. 그 효과로 그간 쌓인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을 털어낼 수 있다는 게 산은의 계산이었다. 중복 부분 제거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는 일회성이 강하다. 수익성 개선의 핵심은 시장지배력이다. 경쟁이 약해지고 협상력이 높아지면 가격결정권이 강화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3년까지 인수합병이 활발했던 미국 항공시장은 상위 4개사가 시장의 72%를 차지한다. 2004년 에어프랑스와 KLM 결합 이후 대규모 인수합병이 적었던 유럽 항공업계는 상위 6개사가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경쟁 강도의 차이는 수익성에서 확인된다. 올해 미국 항공사들의 승객당 세전이익은 9.53달러로 유럽의 4.36달러 보다 2배 이상 높다.

유럽 항공업계도 최근 인수합병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단거리 노선에서는 저가항공사(LCC)와 비용 경쟁을, 장거리노선에서는 주요 공항들 슬롯(slot) 확장을 위한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슬롯은 곧 노선이고 수요다. 공항을 확장하거나 새로 짓지 않는 한 슬롯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확장을 위해서는 다른 곳과 합치거나, 다른 곳이 가진 것을 빼앗아와야 한다.

▶규모의 경제 막는 합병 승인 조건…글로벌 경쟁사의 노림수

화물사업부은 코로나19 극복의 일등공신이다. 지난해까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코로나19 이전 매출 규모로 회복된 올 상반기에도 비중이 21%에 달한다. 합병의 효과가 가장 크게 기대되는 부분이다.

올 상반기 공항공사 집계기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국제여객 점유율은 각각 16.6%, 11.5%다. 국제화물 점유율은 23.2%, 17.2%다. 하지만 이는 모든 노선을 합한 점유율이다. 저가항공사들은 없는 장거리 노선, 즉 북미나 유럽 노선의 점유율은 이보다 훨씬 높다. EU가 독과점을 이유로 승인에 부정적인 이유다. 비슷한 이유로 화물사업부 매각과 별도로 국제여객 부분의 슬롯도 상당수 포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합병 효과 감소 요인이다.

설령 EU의 승인을 얻는다고 해도 다음은 미국이 남는다. 각 국이 독과점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자국과 한국 노선에서의 점유율을 기준이다. 한국-EU 노선의 독과점 우려를 해소돼도 한국-미국 노선의 점유율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한국과 미국 주요도시와의 노선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점유율이 아주 높다. 미국 당국의 승인을 얻기 위해 또다시 엄청난 이권을 포기해야할 수 있다.

일본의 승인도 남았다. 한국과 일본 노선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계열사인 진에어와 에어부산도 운영 중이다. 합계 점유율이 더 높을 수 있다. 일본이 EU와 미국의 선례를 따라 승인권을 지렛대 삼아 슬롯 포기 등을 요구할 수 있다.

▶그래도 대한항공 뿐(?)…누가 이익을 얻나

2년 이상 대한항공의 인수가 막혀있지만 아시아나항공은 아직 망하지 않았다. 한진칼 증자 이후 산은이 영구채와 전환사채(대한항공 경유)를 인수하며 자금지원을 한 덕분이다. 그런데 만약 법원이 당시 한진칼 신주발행을 막았다면 산은이 아시아나항공 자금지원을 끊어 부도가 나도록 했을까? 그렇지는 못했을 것이다.

산은 자금은 결국 국민 돈이다. 당시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기간산업의 경영위기를 막기 위해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조성해둔 상태였다.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금의 적용업종 중 첫째가 항공업이다. 3년 전 산은은 ‘긴급’을 강조했지만 해외독점규제 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이 쉽지 않을 가능성은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이익을 얻는 자가 일을 꾸민 것이란 한비자의 ‘유반(有反)’ 가르침이 새삼 떠오른다.

2021년 대한항공은 3조3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성공했다. 일반주주들이 제 돈을 낼 때 최대주주인 한진칼은 산은에서 받은 돈만을 냈다. 산은이 새로운 주주가 되면서 조원태 한진칼 회장의 지분율이 소폭 낮아졌지만 경영권 분쟁 중에 ‘백기사’를 얻었으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한진칼 최대주주인 조 회장 입장에서는 개인은 물론 회사돈도 들이지 않고 아시아나항공까지 얻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증자로 확보한 3조3000억원 가운데 아시아나항공 경영권 확보를 위한 출자금 1조5000억원을 제외한 1조8000억원은 대한항공 재무구조 개선에 썼다. 산은이 한진칼에 출자한 것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서였는데, 의외로 대한항공에 자금지원을 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결국 현재까지 3년전 결정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쪽은 조 회장이다.

그럼 가장 손해를 본 쪽은 누굴까? 한진칼 주식을 7만800원에 인수한 산은이다. 지금 주가는 4만원3000원이다. 주가를 달아오르게 했던 경영권 분쟁을 끝난 결과다. 경영권 분쟁의 상대방이던 KCGI는 지분을 처분했지만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

비우면 채우고 잃었으면 만회하고 싶은 게 인지 상정이다. 만약 합병이 성사되면 한진칼도, 산은도 그간의 기회비용을 만회해야 한다. 산은은 주가가 높아져야 투입자금을 회수할 수 있고, 조 회장은 산은이 이익을 챙기고 떠나야 한진칼의 경영권을 독차지할 수 있다. 가장 쉬운 길이 현재의 사업기반에서 수익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독점적 지위를 활용한 이익확대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알짜가 헐값에”…사모펀드(PEF), 어부지리 노린다

우리나라에서 사외이사 선임권은 대주주가 갖는다. 이사회가 조 회장과 뜻을 같이 하는 실질적 대주주인 산은의 뜻을 거슬릴 가능성은 낮다. 대한항공이 이미 예비입찰까지 진행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예비입찰에 참여한 곳은 에어프리미아,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에어인천 등 저가항공사(LCC) 4곳이다. 공교롭게도 사모펀드(PEF)가 지배하는 곳들이다. 티웨이항공은 JKL파트너스가 1대주주를 위협할 정도의 2대주주다. 에어프레미아, 이스타항공은 각각 JC파트너스, VIG파트너스가 최대주주다. 화물전용 항공사인 에어인천도 소시어스가 지배하고 있다.

규제 압박에 반강제로 파는 것인 만큼 매각협상에서 우위에 서기 어렵다. 제 값을 받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사는 입장에서는 비교적 싼 값에 살 수도 있다는 뜻이다. 화물부문 매각이 기업가치를 높이지 못하고 오히려 더 떨어뜨린다면 향후 대한항공의 신주인수 가격 재산정 때 기존 아시아나항공 주주들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대한항공 아니어도 아시아나항공 생존 가능할까?

아시아나항공은 2021년부터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섰다. 부채가 많아 금융비용 부담이 크지만 지난 해에는 당기순이익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전년동기 대비 크게 늘었다. 다만 이자비용 상승으로 순손익은 다시 적자다. 결국 빚이 문제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방법은 구주매입이 아니라 신주인수다. 신주발행대금으로 아시아나항공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아시아나항공이 독자생존 하려면 재무구조 개선을 이뤄낼 새로운 대주주가 필요하다. 문제는 대한항공 외에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곳이 있을 지다.

해운업 위기 때 거의 망했던 HMM은 새 주인 없이 산은 등의 지원으로 경영정상화에 성공했다. 지금은 사겠다는 곳은 많은데 몸값이 너무 비싸 고민일 정도다. 항공업도 해운업과 마찬가지로 국가 기반산업이다. 국민편의와 국가경쟁력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아시아나항공의 명목상 최대주주는 여전히 금호건설(지분율 30.77%)이다. 산은과 수은은 1조1550어권 규모의 영구전환사채(CB)를 갖고 있다. 금호건설 지분을 차등감자로 없애고 CB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산은 등이 57% 이상의 지분을 갖게 된다.

한편 산은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가치를 높이려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인정받아야 한다. 현재 조 회장과 우호세력인 델타항공의 지분율은 약 34%다. 2대주주인 호반건설(11.6%)은 4대 주주인 팬오션 지분(5.85%)를 인수할 예정이다. 산은 지분(10.58%)의 향배에 따라 경영권이 좌우될 수도 있는 구조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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