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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채발행 때문에 난리난 채권시장…가계·기업 이자부담 커질수도 [홍길용의 화식열전]
기재부 11월 국고채 발행 40% 줄여
물량조절 명분 인기높은 30년물 급감
과거 1%대 발행 채권도 굳이 중도상환
장기금리 눌러 단기금리 더 오르면
빚 많은 기업·가계 이자부담 커져

30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가 4분기 국채 발행물량 추정치를 기존보다 낮추면서 뉴욕 증시가 급반등했다. 증시를 짓누르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yield) 상승세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기대에서다. 경제시스템에서 주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채권이다.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중앙은행들의 긴축이 숨고르기에 들어가면서 정부의 재정정책이 금리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다.

채권시장은 금리시장이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버금가게 중요한 것이 발행과 유통시장이다. 국채는 발행과 유통량이 제일 많을 뿐 아니라 다른 채권 가격의 기준이 된다. 기업의 자금조달을 물론 국민들의 금융거래 조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정부는 국채를 통해 부족한 자금을 조달하지만, 동시에 채권시장이 안정적이고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관리할 책임도 있다.

지난 27일 우리 채권시장에서 난리가 났다. 정부가 11월에 발행할 국고채 가운데 30년 만기물을 크게 줄인 것도 모자라 시장에서 일부 되사는(buyback) 거래까지 예고하면서다. 공급도 줄이고 유통중인 물량까지 일부 줄인다니 가격이 급등했다. 채권금리는 가격과 반대다. 전날 4.234%로 거래를 마쳤던 수익률(yield)는 이날 4.032%로 마감했고 장중 한때 3.991%까지 밀렸다.

▶ 30년 국채, 수요 많은데 공급 줄여…싸게 빌린 돈도 굳이 갚기로

정부의11월 국고채 발행계획은 10월 보다 40.5%(3조5000억원) 작은 5조원이다. 10월 2조3000억원으로 발행액이 가장 많았던 30년물을 60.87%나 줄인다. 30년물은 만기가 긴 상품을 운용하는 보험사와 연기금 등에는 필수적이다. 부족하면 평균 잔존만기(duration) 관리가 어려워진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초장기(잔존만기20~30) 국고채 거래가 중단기물(5년 이하) 보다 활발하다.

3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하락하면 정부의 조달비용이 낮아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하지만 조달금리 낮추자고 정부가 자칫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는 행보를 보이면 그에 따른 경제시스템의 기회비용은 더 커질 수 있다. 그래서 이상한 것이 정부가 11월 2조원 규모의 바이백 물량에 기발행 된 30년물을 대상에 포함시킨 점이다. 과거 1%대 금리로 발행된 물량들이다. 지금보다 최소 1%포인트 이상 낮은 수익률이다. 올해 세수 부족으로 한국은행에서 급전까지 빌려 쓴 정부다. 지금보다 훨씬 싼 이자로 빌려온 돈을 굳이 조기에 갚겠다고 나선 것은 누가 봐도 밑지는 장사가 분명하다. 값이 급등하는 게 당연하다.

30일 진행된 11월 국고채 입찰에서 30년물의 응찰률은 282.8%로 전월(257.6%)을 웃돌았다. 발행물량 축소에도 강한 수요를 보여준 셈이다. 이날 낙찰된 금리는 4.015%로 지난 26일 종가(4.241%) 대비 22.6bp(100bp=1%포인트) 낮다. 투자자들로서는 이틀 전보다 비싼 값에 산 셈이다. 지난 달 4일 경쟁입찰 낙찰가가 4.13%로 직전일 종가(3.896%) 보다 싸진 것과 반대다.

▶ 美 비정상이 정상으로…韓 정상을 비정상으로

통상 채권은 만기가 길수록 미상환 위험이 커 가격이 낮아진다. 즉 금리가 더 높다. 단기금리보다 장기금리가 더 높은 게 정상이다. 달리 풀면 경제가 꾸준히 성장한다고 가정할 때 지금보다 더 먼 미래에는 높은 이자를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중앙은행에 좌우되는 단기금리가 오르면 성장에는 부정적이다. 단기금리보다 장기금리가 더 낮은 상황을 불황의 전조로 보는 이유다.

기준금리가 5%를 넘어설 때 3% 수준이던 미국의 10년 국채금리는 최근 5%에 근접했다.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완화되는 추세다. 30년물 금리는 10년물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더 높은 정상 상황이지만 유독 30년물 금리만 10년보다 낮다.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해서인데 정부의 11월 계획은 이 같은 금리 역전을 더 심화시킨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가파른 금리상승세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발행량을 축소했고 특히 최근 금리상승세가 컸던 장기구간 물량을 상대적으로 많이 줄였다”고 설명했다. 또 “올해 30년물만 비경쟁인수 옵션이 활발히 행사돼 연간계획과 비교할 때 과도하게 발행된 측면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바이백에 대해서도 “미국의 국채 발행계획, 연준 회의 등 굵직한 이번트가 이번주에 많아 그에 따른 시장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종목별 매입액은 시장 상황과 향후 이자 부담, 매입단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탄력적으로 조정하겠다”고 강조했다.

▶자금시장 왜곡되면…기업·가계 이자 부담 커질 수도

국채 발행은 언뜻 일반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시장에서 단기금리는 중앙은행이 좌우하지만 중장기금리는 기준이 되는 국고채 발행계획이 큰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특정 국채의 가격을 조종하면 시중자금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예들 들어 정부가 단기물인 2~3년물 발행 비중을 상대적으로 더 높이면(발행량을 덜 줄이면) 상대적으로 금리가 오르거나 덜 떨어질 수 있다.

실제 올 연중 최고 대비 10월 30일 금리는 30년물이 22bp, 10년물이 6.2bp, 5년물이 2.4bp, 3년물이 1.9bp 낮다. 만기가 짧을수록 최고치에 근접하고 있다. 통상 만기 3년 이하로 발행되는 회사채 금리는 같은 만기의 국고채 금리에 일정 수준을 가산해 정해진다. 단기 국고채 금리가 오르거나 덜 떨어지면 회사채 조달비용 부담을 높이는 요인이다.

회사채 금리는 가계·기업이 돈을 빌리는 값의 기준이 된다. 은행이 발행하는 은행채가 특히 그렇다.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들께서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이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부가 자칫 채권시장의 안정을 해친다면 국민의 ‘은행 종노릇’을 더 힘들게 하는 모양이 될 수 있다.

▶장기채권 충격, 단기시장까지…여전사·부동산PF 비상

11월부터는 한도가 사라진 은행채 발행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국고채와 은행채로 단기자금이 몰리면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곳은 돈 구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올 들어 9월까지 하향 안정 추세를 보이던 회사채와 국고채의 금리 차(3년 만기 기준)가 최근 가파르게 커지는 상황은 그 증거다. 연말로 갈수록 기관들의 자금 집행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어 이 금리 차는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당장 회사채로 빌린 돈으로 영업을 하는 카드사나 할부금융·리스사 같은 여신전문금융회사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올해 말까지 갚아야 할 돈이 15조원이 넘는다. 국고채와 은행채로 단기자금이 쏠려 차환 발행이 어려워지면 만기 1년 미만의 초단기채나 기업어음(CP)으로라도 조달해야 한다. 이는 CP 의존이 높은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자금 압박을 연쇄적으로 높일 수 있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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